거센 인공지능 바람, 대입 판도 바꾼다
AI 학과 급부상·문사철 반등 … 의대 독주에서 ‘쌍두마차’ 구도로
인공지능(AI) 산업을 둘러싼 변화가 대학입시 지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6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에서 AI 관련 학과 지원자는 크게 늘어난 반면, 의대·치대·약대·한의대·수의대를 포함한 의학계열은 지원자가 감소했다. 동시에 철학·언어학 등 AI 시대와 연관된 인문계 학과의 경쟁률이 오르며 대입 판도가 ‘의대 독주’에서 AI를 축으로 한 다극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2026학년도 정시에서 주요 대학의 AI 관련 학과 지원자는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서울시립대 첨단인공지능전공은 경쟁률이 36.0대 1까지 올랐고 서강대 AI기반자유전공학부도 28.6대 1을 기록했다. 세종대 AI융합전자공학과, 국민대 AI빅데이터융합경영학과 등도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경북대 전자공학부(인공지능전공) 지원자가 늘며 AI 학과 인기가 전국 단위로 확산되는 흐름이다.
AI 학과 강세는 단순한 취업 선호를 넘어선 변화로 해석된다. 산업 환경이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특정 직무보다 기술 변화에 대한 이해력과 확장 가능한 역량을 중시하는 인식이 강해졌고 AI 전공이 이를 상징하는 선택지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이와 맞물려 취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받아 온 철학·언어학 등 이른바 ‘문사철’ 전공의 경쟁률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서울대 철학과 수시 경쟁률은 2020학년도 9.92대 1에서 2026학년도 15.56대 1로 올랐고, 언어학과·종교학과·미학과도 같은 기간 경쟁률이 상승했다. 고려대에서도 철학과와 언어학과 정시 경쟁률이 꾸준히 증가했다.
교육계는 이를 AI 시대에 따른 인문학 가치 재평가로 보고 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이를 해석하고 사회적 의미로 전환하는 인간 고유의 사고력과 문해력이 중요해지면서 인문학 전공의 전략적 가치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학과 AI를 결합한 융합학부의 경쟁률 상승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반면 의대와 의학계열은 상대적으로 주춤했다. 2026학년도 전국 39개 의대 정시 지원자는 7125명으로 전년 대비 32.3% 감소했다. 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를 포함한 의학계열 전체 지원자도 큰 폭으로 줄었다. 의대 정시 모집 인원이 전년보다 32.6% 감소한 영향이 컸지만 지원자 감소 폭은 이를 웃돌았다.
다만 이를 의학계열의 위축이나 몰락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상위권 의대의 경쟁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안정적인 직업군으로서의 위상도 유지되고 있다. 다만 과거처럼 의대가 사실상 유일한 최상위 선택지로 군림하던 구조가 완화되고 AI와 신산업 전공이 나란히 경쟁하는 ‘쌍두마차’ 구도로 전환되고 있다는 평가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의대 모집 인원 축소는 직접적인 요인이지만 의학계열 전반의 지원 감소는 최상위권 진로 선택이 분산되고 있다는 신호”라며 “AI를 비롯한 신산업 전공과 이를 뒷받침하는 인문계 전공이 함께 부상하는 구조 변화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대입 흐름을 ‘AI 중심 재편’으로 요약한다. 기술을 다루는 AI 전공, 기술을 해석하는 인문학 전공, 안정성을 갖춘 의학계열이 공존하는 다축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바람은 산업을 넘어 대입 판도까지 바꾸고 있다. ‘의대 독주’ 구도가 완화되고 AI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균형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입시 변화는 향후 교육과 노동시장 흐름을 가늠할 중요한 신호로 읽힌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