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웹 “돈이 아닌 정의를 남기고 싶었다”

2026-01-16 13:00:03 게재

홍콩재벌과 싸운 투자자

NYT 부고 기사로 재조명

지난 9일 전립선암으로 투병 중이던 행동주의 투자자 데이비드 웹(David Michael Webb)이 홍콩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0세. 그는 생전 30여 년 동안 홍콩의 금융계를 감시하고, 재벌과 권력층의 담합을 폭로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13일자 부고 기사에서 그를 “끈질긴 감시자”이자 “시민을 위한 금융 개혁가”로 조명했다.

1965년 8월 29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웹은 이스트 미들랜즈 지역의 입양 가정에서 자랐다. 10대 시절 컴퓨터 게임을 개발해 얻은 수익으로 주식 투자에 입문했고, 옥스퍼드대 엑서터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런던의 투자은행 세 곳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기 6년 전인 1991년 홍콩으로 이주했다. 그는 당시 주목받지 않았던 소형 상장사들 속에서 잠재력을 찾아 큰 이익을 얻은 뒤 30대 초반에 조기 은퇴했다. 이후 그는 경제적 자유를 바탕으로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소수 주주 보호, 금융제도 감시, 기업 구조의 투명성 제고에 바쳤다.

웹의 가장 상징적 유산은 1998년 설립한 ‘웹사이트(Webb-site)’다. 구글보다도 이른 시기에 시작된 이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는 홍콩 내 기업, 이사진, 금융 뉴스 및 공시자료를 방대하게 축적했다. 초기 인터넷 스타일을 유지한 간결한 텍스트 중심 구성은 접근성과 효율성을 높였고, 언론인과 기업조사자들이 꼭 찾는 필수 자료로 자리잡았다. 웹은 이 플랫폼을 통해 “금융 시장이 제 기능을 하려면 정보 비대칭과 권력 남용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계기는 2017년 ‘에니그마 네트워크’ 보고서였다. 그는 50개에 달하는 홍콩 상장사 간의 은밀한 연결 관계를 추적·분석해 발표했다. 그 결과 해당 기업들 주가는 폭락했고, 금융당국은 주가 조작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웹이 어떤 방식으로 시스템을 감시하고 변화를 촉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웹은 2003년 홍콩 증권거래소 이사직에 올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회가 정보 은폐와 정치적 고려에 굴복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사임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바깥에서 변화를 이끄는 편이 낫다”는 신념을 끝까지 지켰다. 그는 2014년 홍콩의 민주적 선거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에서 시민들 앞에 서서 연설하기도 했다. 그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부야말로 홍콩을 더욱 안정적이고 번영하게 만든다”고 강조하며 정치와 경제의 유착을 끊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2023년부터는 자신의 방대한 보고서를 ‘인터넷 아카이브’에 백업하며 정보의 보존을 시도했다. 지난해 6월 그는 영국으로부터 대영제국훈장을 수훈했다.

그러나 그는 명예보다 실질적 변화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묘비에 ‘돈을 많이 벌었다’는 말 대신 ‘사는 곳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카렌 웹, 두 아들과 어머니, 누나, 동생을 남겼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정재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