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그린란드 관세’ 위협에 ‘셀 아메리카’ 논쟁 다시 불붙어
달러 약세·주식선물 하락 작년 4월 ‘해방의 날’ 소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유럽 8개국에 대해 2월부터 10%, 6월부터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는 미국의 그린란드 매입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유지된다는 조건이다. 이어 19일 NBC 뉴스 전화 인터뷰에서도 그는 “관세는 100% 실행될 것”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뉴욕증시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데이로 휴장한 가운데 선물시장에서 S&P500과 나스닥 종합지수 선물은 장중 1% 안팎의 약세를 보였다. 달러화도 약세로 돌아서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99선 초반으로 하락했다. 유로화와 파운드화, 스칸디나비아 통화는 반등했고, 스위스 프랑도 달러 대비 강세를 나타냈다.
이번 논란은 자연스럽게 지난해 4월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하자 S&P500 지수는 이틀 만에 12% 폭락했다.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던 미 국채까지 투매가 이어지며 금리가 급등했고 달러 약세와 국채 금리 급등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례적 흐름 속에서 ‘셀 아메리카’라는 표현이 확산됐다. 시장 충격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시행을 90일 유예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에는 당시와 환경이 다르다”고 진단한다. 인사이트 인베스트먼트의 프란체스카 포르나사리 외환 솔루션 책임자는 주말 사이 발표에 충격을 받은 투자자들이 적지 않지만 미국 경제의 견조한 성장세와 주식시장의 상대적 강세가 달러와 미 자산을 지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달러화 가치는 지난해 4월 이후 이미 상당 폭 하락해 추가 조정 여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의 대응 역시 변수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약 8조달러 규모의 미 주식과 채권을 보유한 미국의 최대 채권자다. 도이체방크의 조지 사라벨로스 글로벌 외환 리서치 책임자는 서방 동맹의 지경학적 안정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유럽이 기존처럼 미국의 자금 공급자 역할을 계속할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실제로 유럽연합(EU)이 민간 투자자들에게 달러 자산 매도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단기간 내 대규모 이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ING는 EU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유로 자산 투자에 대한 유인 강화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고, 소시에테 제네랄의 킷 주크스 외환전략 책임자 역시 “공공부문 자금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투자 성과를 훼손하려면 갈등이 더 고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낮추려는 유인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인공지능(AI) 붐을 둘러싼 미국 증시의 고평가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올 들어 미국 증시 성과가 글로벌 평균에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클레이스는 고객들 사이에서 미국 관련 위험을 고려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려는 수요가 강하다고 진단하며 이는 무질서한 ‘미국 매도’라기보다는 미국 비중을 낮추고 글로벌 자산으로 분산하는 흐름으로 해석했다.
결국 ‘그린란드 관세’ 위협이 잠깐 시장을 흔들었지만 지난해 4월과 같은 급격한 셀 아메리카로 직결될지는 불투명하다. 다만 동맹국을 상대로 한 관세 압박이 반복될 경우 달러와 미 자산이 지녀온 절대적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