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개편 33년…바뀔수록 사교육만 커졌다

2026-01-21 13:00:01 게재

등급제·수준별 수능 도입했다가 폐지 반복 … 형식적 공정성 vs 출발의 공정성 고민 필요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2018 수능부터 절대평가로 전환한 영어 영역은 2026 수능 1등급 비율이 3.11%에 그쳤다. 역대급 ‘불수능’이라는 비판 속에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영국 BBC는 한국 수능 영어 난도를 두고 ‘악명 높게 어렵다’ ‘고문자 해독 수준’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생명과학Ⅰ’ 같은 일부 선택 과목에서는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문항을 풀어내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선택 과목에 따른 유불리와 변별력을 둘러싼 논란은 반복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28 수능은 선택 과목 전면 폐지라는 또 한번의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매해 겨울마다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는 수능은 학력고사와 같은 암기 중심 시험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고력과 학업 역량을 평가하겠다며 도입됐다. 그 취지는 지금 어느 정도 실현됐을까. 시행 33년을 맞은 수능의 현재와 한계를 짚어봤다.

“암기 위주 즉답형 학력고사 한계 극복”

“비정상 교육 풍토 쇄신 산교육 기대”

오랜 준비 과정 끝에 베일을 벗은 1994 수능 직후 쏟아진 기사 제목이다. 시험 직후부터 창의적 사고력이 중시되며 독서 열풍이 불었다. 시행 5년이 지나자 ‘수능 도입 취지 살리지 못해’ ‘학교 교육 왜곡시키는 사교육 주범’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정부는 곧바로 ‘2002 대입 제도 개선안’을 꺼내 들었다. 대학이 수능은 물론 고교 성적과 비교과 활동 논술 면접 등 다양한 요소를 대입 평가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수능에서는 총점 및 소수점 표기를 폐지하고 9등급제를 도입했다.

성적표에 아예 등급만 표시한 해도 있었다. 점수를 세세하게 공개하면 수험생이 몇 점 차이에 매달리는 경쟁 양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판단해 2008 수능 성적표에는 영역별 등급만 기재했다. 하지만 수험생은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더 불안해했고 논술과 면접 준비에 사교육이 깊이 파고들었다. 점수 경쟁을 줄이려던 성적표 등급 표시제가 기대와 달리 혼란만 키웠다. 결국 학생·학부모와 대학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시행 1년 만에 원래대로 돌아갔다.

◆EBS 연계율 높여도 사교육 못 잡아 = 수능이 시작되고 초기 ‘쉬운 수능’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점차 변별력을 강화하는 수능으로 변화했다. 그 결과 문제 풀이 중심의 학원과 과외가 확산되며 ‘사교육이 성적을 좌우한다’는 인식도 커졌다. 정부는 사교육의 역할을 공교육이 대신할 수 있도록 대안을 찾았다. 2005 수능부터 EBS 교재와 강의 내용을 수능 문항과 연계하기 시작했다. 도입 초반 체감 연계율은 20~30% 수준이었다. 2000년대 후반까지 대부분 간접 연계였다. 이번엔 ‘EBS를 봐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결국 학원을 가야 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사교육비는 줄지 않았고 정책 효과에 대한 회의도 커졌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정부는 사교육비 경감을 대표 교육 공약으로 내세웠다. 2011 수능은 전 영역에서 EBS 교재 연계율이 70%를 넘어섰다. 언어 영역의 연계율은 72%였다. 실제로 그해 수능 이후 ‘EBS를 보면 수능이 보인다’ ‘학교 수업과 공교육 콘텐츠만으로 수능 대비 가능’ 등의 기사가 쏟아져나왔다. 속사정은 달랐다.

정두연 강남하이퍼 전략담임은 “EBS 교재와의 직접 연계율이 계속 높아지면서 수험생은 사고와 이해 대신 교재 내용을 그대로 외우는 데 매달렸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EBS를 달달 외우는 공부’가 정상적인 학습 방식처럼 자리 잡았다. 당시 상대평가였던 영어 영역에서 직접 연계 체감률이 높았는데 학생은 영어 공부 대신 한글 번역본을 외우기도 했다. 결국 교육부는 2014학년부터 직접 연계를 줄이고 간접 연계 방식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2022 수능부터는 EBS 연계율을 50%로 낮추고 공식적으로 간접 연계 체제로 전환했다.

◆수준별 수능 3년 만에 폐지 = 2014 수능에서는 수준별 수능이 등장했다. 국어 수학을 난도별로 두 개로 나눠 중위권 학생이 상위권 학생과 같은 시험에서 과도한 부담을 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도입 배경이었다. 이번에도 ‘고교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불필요한 경쟁과 사교육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의도였다.

시행 이후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대학이 변별력을 이유로 난도가 높은 B형을 선호하면서 수험생은 진로와 무관하게 B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였다. 선택의 자유는 공허한 외침에 그쳤고 오히려 상위권 쏠림과 사교육 의존도가 강화됐다는 비판이 커졌다. A형은 ‘쉬운 시험’이라는 인식 속에 평가 절하됐고 같은 과목임에도 선택 유형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면서 입시 공정성 논란도 반복됐다. 결국 수준별 수능은 학생의 부담을 줄이기보다는 새로운 전략 경쟁과 혼란을 낳았다는 평가 속에 도입 3년 만인 2017 수능을 끝으로 폐지됐다.

류승백 서울 강동고 교사는 “수능이 도입된 이후 30여 년 동안 정부는 모두 7차례에 걸쳐 대입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며 “그 과정에서 어떤 제도는 단 1년 만에 혹은 2~3년 시행된 뒤 사라졌다”고 회상했다. 학생이 제도를 이해하고 대비하기도 전에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고 학교 현장이 적응할 즈음이면 또 다른 개편이 예고되는 식이었다.

장지환 서울 배재고 교사는 “우리나라 교육 정책의 목표는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중심에 두겠다는 것”이라며 “제도가 바뀌면 학부모와 학생 모두 기대를 품지만 몇 년이 흐르면 상황은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제도가 반복 시행되면서 문제 유형이 정형화되고 시험 데이터가 쌓이면서 입시는 다시 ‘전략 싸움’이 된다. 이 과정에서 사교육은 가장 빠르게 적응한다. 결국 처음 취지와는 달리 사교육에 의존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구조로 돌아간다는 설명이다.

수능은 계속 바뀌어도 사교육은 줄지 않았다. 2024년 우리나라 사교육비 총액은 약 29조원에 달했다. 같은 해 정부가 편성한 국방비 예산은 약 59조원으로 사교육비는 국방비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한해 동안 가계가 사교육에 쏟아부은 돈이 국가 핵심 예산과 견줄 만큼 많다.

장 교사는 “대입에서 수능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사교육 부담은 늘 수밖에 없다”며 “아쉬운 대입 결과를 받아든 고3 학생이 ‘우리 집은 재수를 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고 말할 때면 공교육을 맡고 있는 교사로서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토로했다.

이어 “국가고사인 수능이 사교육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보면 이미 수능이 그 운명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진단했다.

◆수능이 대입에 미치는 영향은 = 당초 수능은 대입의 결정적인 전형 자료로 도입한 것이 아니다. 초기에는 대학의 자율적 선발권을 존중한다는 원칙 아래 수능과 함께 대학별 고사가 일정 부분 허용됐다. 실제로 1994~1996학년 대입에서는 대학이 이른바 ‘본고사’라고 불리는 자체 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할 수 있었다. 본고사가 과도한 입시 부담과 사교육 확대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1997학년부터는 서울대를 비롯한 국·공립대학을 중심으로 논술고사를 제외한 국어·수학·영어 과목 위주의 대학별 고사를 폐지했고 대입에서 수능 의존도가 점차 높아졌다.

장 교사는 “정시와 수시로 이원화된 대입 구조에서 학생들은 ‘수시러’ ‘정시러’로 나뉘어 학습보다 전략을 앞세우는 선택에 내몰린다”며 “복잡한 전형을 대비하려 입시 컨설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합격생의 최근 3개년 자료를 보면 서울 지역 출신 합격생은 정시 비중이 다른 지역보다 뚜렷하게 높다. 2025학년 서울 출신 합격생의 정시 비율은 46.8%로 시 지역 37.8%나 광역시 11.8%보다 높다. 이는 서울 지역 학생들이 수능 중심의 정시전형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재수·삼수 이상 합격생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2025학년 전체 합격생 가운데 재수생은 17.1% 삼수 이상은 9.0%로 상당수가 수능을 여러 차례 치른 끝에 합격했다. 특히 정시전형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수능은 ‘반복해 도전하면 성적을 높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이유다. 이는 곧 사교육 문제와 맞닿아 있다. 서울은 대형 학원과 입시 컨설팅 등 수능 대비 사교육 인프라가 가장 집중된 지역이다. 시험은 동일하지만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원과 정보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 소장은 “수능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은 오래된 질문”이라며 “수능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문제를 푸는 구조인 만큼 제도 자체의 형식적 공정성은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국 단위 경쟁이라는 특성상 사교육 인프라와 교육 환경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지역에서 높은 성적이 나오는 경향은 피하기 어렵다. 이어 “‘형식적 공정성’과 ‘출발선의 공정성’ 사이에서 꾸준히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8 수능 변별력 약화 우려 = 2028 수능은 선택 과목에 따른 유불리를 없애고 융합적 사고를 기르는 방향으로 시험 체계를 바꾸는 데 목적이 있다.

류승백 서울 강동고 교사는 “수능은 그 시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인재상을 반영하려고 노력해 왔다”며 “최근 수능 개편 논의에서 공정성이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이유는 선택 과목 조합에 따라 여러 개의 ‘보이지 않는 기준선’이 생기는 상황을 줄이려는 사회적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다수의 입시 전문가는 수능 ‘통합사회’ ‘통합과학’은 2·3학년에 배우는 탐구 영역 선택 과목에 비해 이론적으로 난도는 낮아지겠지만 변별력까지 하락하면 지금의 일부 수능 과목처럼 변별력만을 위한 ‘기괴한 문제’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수능 탐구 과목이 고1 과정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점도 과제로 지적된다. 1학년 때 배운 내용을 3학년 말에 평가하는 구조가 학습의 연속성과 심화 측면에서 적절한지 학교 현장에서 체계적인 학습 관리가 가능할지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또 이공계열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통합과학’ 수준의 개념 이해만으로 대학에 진학할 경우 이후 전공 학습과의 간극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차염진 기자·이도연 내일교육 리포터 ldy@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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