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 관세 재인상 압박 혼선
백악관 “합의 불이행”
외신 “불확실성 확대”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이 한국 관세 인상 방침을 묻자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인상 가능성 언급 하루 만에 ‘협상 모드’ 신호를 던진 셈이다.
하지만 같은 날 백악관은 메시지를 달리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연합뉴스 질의에 “한국은 더 낮은 관세를 확보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와 (무역) 합의에 도달했다”며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관세를 인하했지만 한국은 그 대가로 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는 데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관세 인하의 대가로 내세운 것은 한국의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이며, 이를 위한 ‘대미투자특별법’이 한국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는 점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 의회 일각에서도 관세 압박을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이 나왔다. 연방 하원 법사위원회 공화당 측은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관련 글을 공유하며 “쿠팡과 같은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겨냥할 때 발생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내 개인정보 유출 논란 이후 쿠팡 책임을 묻는 입법·행정 움직임을 ‘미국 기업 겨냥’으로 규정하며 관세 문제와 연결 지은 것이다.
다만 백악관 관계자는 관세 인상이 실제로 언제, 어떤 절차로 시행될지에 대해선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국을 향한 ‘경고성 신호’에 가깝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트럼프식 협상 카드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미경제연구소(KEI) 톰 라마지 분석가는 “더 많은 양보를 얻기 위한 협상 전술일 수 있다”면서도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되 대응을 서두르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상호관세의 법적 근거로 활용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대한 미 연방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다는 점을 변수로 들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에서 주한미국대사 대리를 지낸 로버트 랩슨도 “변덕스러운 관세 위협”이라며 “실용적 대응은 트럼프와 그의 팀과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화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허드슨연구소의 패트릭 크로닌 석좌는 트럼프 외교의 본질을 “가혹한 거래주의”로 규정하며 “지렛대를 극대화해 더 많은 안보 부담 공유와 양보를 얻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외신 반응은 더 직설적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관세 재인상 언급을 “작년 말 타결된 한미 합의를 뒤엎는 것”으로 표현하며 다른 국가들도 동요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한미 합의가 조약이 아니라 팩트시트·양해각서(MOU) 형태로 이뤄진 탓에 정치적 판단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이 부각됐다는 분석이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역시 이번 사안을 “이달 들어 이어진 관세 위협의 연장선”으로 보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경고한 관세들이 실제 부과로 이어진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유럽을 상대로 예고했던 ‘그린란드 관세’가 철회된 사례도 함께 거론됐다.
한국 정부는 관세 재인상 가능성을 엄중히 보되 실제 집행 가능성과 미국 내 정치·사법 변수를 함께 따져 대응 수위를 정한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부 장관의 방미 협의 추진, 정무라인 후속 협의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