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전자담배가 일반담배 추월
질병관리청 패널조사 첫 확인 … 규제 강화 속 업계 우회 움직임
청소년 흡연의 모습이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을 중심으로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비율이 일반 담배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는 사실보다, 흡연의 시작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한 변화로 지목된다.
29일 질병관리청의 ‘청소년건강패널조사(2025) 최종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학생을 7년 동안 계속 조사한 결과 고교 2학년 여학생의 현재 흡연률에서 액상형 전자담배(1.54%)가 일반 담배(1.33%)보다 높게 나타났다. 전자담배 사용률이 일반 담배를 앞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담배를 한 번이라도 피워본 경험률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빠르게 높아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0.35%에 불과했지만 중학교 3학년에는 3.93%, 고등학교 1학년에는 6.83%로 늘었다. 고등학교 2학년에는 9.59%까지 올라갔다. 보고서는 이 결과를 두고 “얼마나 많이 피우느냐보다, 어떤 담배를 처음 접하느냐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전자담배는 냄새가 적고 연기가 거의 없으며 디자인도 전자기기나 생활용품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청소년, 특히 여학생에게 담배보다 덜 위험한 물건처럼 느껴질 수 있다. 조사에서는 이런 인식이 흡연에 대한 부담을 낮추면서 전자담배가 금연을 돕는 수단이 아니라 흡연을 처음 시작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제도가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액상형 전자담배를 규제하는 법안이 마련되자 일부 업계가 규제를 피해 갈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대체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 규정해 관리하려는 취지지만 성분이나 모양을 바꾼 제품이 다시 등장할 경우 청소년의 접근이 더 쉬워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전자담배 사용 증가는 청소년 건강 전반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조사 결과 흡연과 음주뿐 아니라 식습관·운동·정신건강 지표까지 학년이 올라갈수록 함께 나빠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한 가지 행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건강 관리가 어려워지는 구조라는 뜻이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는 시점이 가장 취약한 시기로 나타났다. 중학교 1학년이 될 때 음주를 처음 경험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흡연과 음주 경험도 빠르게 늘었다. 이는 새로운 학교 환경과 또래 관계 속에서 유해한 행동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생활 습관도 크게 달라졌다. 아침을 거르는 비율은 33.0%로 높아졌고 과일과 채소, 우유를 먹는 비율은 줄었다. 하루 60분 이상 운동하는 학생은 10명 중 1명 남짓에 그쳤다. 학년이 오를수록 공부 시간은 늘고, 몸을 움직일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흐름이 반복됐다.
정신건강에서도 적신호가 나타났다. 스마트폰에 과하게 의존한 경험이 있는 학생은 35.1%에 달했고 불안 증상을 겪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연구진은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쌓이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런 변화의 원인으로 개인의 의지보다 주변 환경의 영향을 강조했다. 친구들의 태도, 가정 내 흡연·음주 환경, 부모의 관심과 대화 방식 등이 흡연과 음주 시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자담배 확산 역시 한두 학생의 일탈로 보기보다는 생활환경 전체가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질병관리청은 앞으로도 학생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조사에 계속 참여하는 비율도 80.7%로 높은 편이다. 청소년 시기의 습관이 성인이 된 뒤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보고서는 “청소년 건강 문제는 가정이나 학교 중 어느 한 곳만의 책임이 아니다”라며 학교·가정·지역이 함께 살피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흡연과 전자담배 문제 역시 단속만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전환기마다 아이들의 생활과 환경을 함께 점검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