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 선고에도 찜찜한 내란 단죄
계엄 명분 북한 무인기 침투에도
재판부 ‘계엄 이틀 전 결심’ 판단
장기독재 여건 조성 목적도 부인
법원이 12.3 비상계엄은 내란행위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계엄선포 443일 만에 내란 우두머리인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가 내려진 것인데 선고 내용이 국민의 상식은 물론 기존 판결과 다른 점이 많아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19일 선고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12.3 비상계엄이 내란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실관계의 가장 핵심은 군을 국회로 보낸 것”이라며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 활동을 저지·마비시켜 국회가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을 내심으로 갖고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국헌문란 목적’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또 “비상계엄 선포 및 포고령의 공고, 국회 봉쇄 행위, 국회의원 및 정치인 등 체포조 편성 및 운영, 중앙선관위 등 점거·서버 반출 및 직원 등 체포 시도 등은 그 자체로 폭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 등의 행위가 내란죄의 핵심 구성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고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내란죄를 규정한 형법 제87조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처벌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앞서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이진관 재판부, 같은 혐의의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류경진 재판부도 12.3 비상계엄을 내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지귀연 재판부는 다만 비상계엄 선포가 실체적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내란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원칙적으로 계엄의 요건을 갖추었는지 여부에 따라 내란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며 “실체적 요건을 갖추었는지 여부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고 이를 섣불리 사법심사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은 자칫 필요한 경우 판단을 주저하게 만드는 저해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국가긴급권은 사법 심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윤 전 대통령측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기존 판례와 배치된다. 앞서 2013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유신정권 시절 선포된 ‘긴급조치 4호’ 관련 피해자 재심 사건에서 “국가긴급권은 국가가 중대 위기에 처했을 때 필수불가결한 최소한도로 행사돼야 하며 헌법상 발동 요건·한계에 부합해야 한다”면서 “긴급조치 4호는 발동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고, 현행 헌법에 비춰봐도 위헌 무효”라고 판단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도 지난해 4월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비상계엄 선포가 실체적·절차적 요건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위헌·위법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재판부가 판단한 사실관계를 놓고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회가 무리한 탄핵소추 시도, 일방적인 예산안 삭감 시도 등 대통령과 정부의 활동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게 된 윤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1일 무렵 ‘더는 참을 수 없다.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 사건의 실체에 부합한다고 봤다.
계엄 준비가 2023년 10월 이전부터 이뤄졌다는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의 판단과 달리 사실상 우발적인 계엄 선포로 본 것이다. 이에 따라 국회를 제압해 장기독재 여건을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실행했다는 특검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국회 기능을 마비시킨 이후 국회를 대체할 국가비상입법기구 설치를 지시한 ‘최상목 계엄 문건’을 장기집권의 의도를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했으나 재판부는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주요 인사들에 대한 ‘수거계획’과 계엄 준비 과정 등이 기록된 ‘노상원 수첩’에 대해서는 “모양, 형상, 필기형태, 내용 등이 조악한데다 보관하고 있던 장소, 보관방법 등에 비춰 보더라도 중요한 사항이 담겨 있던 수첩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 판단대로라면 계엄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에 무인기를 침투시킨 혐의도 인정받기 어렵게 된다.
윤 전 대통령 등이 물리력 행사를 최대한 자제시키려 했다는 재판부의 판단도 기존 판결과는 다른 부분이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선고 당시 이진관 재판부는 “내란 행위 자체는 몇 시간 만에 종료됐으나 이는 무엇보다도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서 국회를 지켜낸 국민의 용기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지귀연 재판부는 양형의 이유에서 “형법은 내란죄가 위험범임에도 상당히 높은 법정형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어떠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해놓고는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감형 사유로 “대부분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을 들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