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다카이치에 호르무즈 ‘역할 ’ 압박
일본 “법적 한계” 신중 대응 109조원 투자·협력 제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회담에서 “일본이 나서주길 기대한다”며 호르무즈 해협 방어에 대한 일본의 기여 확대를 촉구했다. 그는 “일본은 석유의 90% 이상을 해당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고 강조했고, “일본에는 4만5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우리는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며 동맹 차원의 ‘상호성’을 거론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은 나토와 다르다”고 말해 호르무즈 파병 요청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과 일본을 대비시키는 동시에 일본의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공개적인 ‘면전 압박’ 성격이 강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란의 핵 개발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강하게 비판하며 미국의 대이란 정책에 외교적으로 힘을 실었다. 그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해협 봉쇄와 인접국 공격은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당신만이 세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정치적 지지 메시지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핵심 쟁점인 군사적 기여 문제에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회담 후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확보가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면서도 “일본 법률의 범위 내에서 가능한 조치와 그렇지 않은 조치가 있다”고 밝혀 자위대 파견 등 직접적인 군사 개입에는 제약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일본의 ‘평화헌법’ 체제와 직결된 문제다. 일본은 전후 헌법에 따라 무력 사용을 엄격히 제한받고 있어 전투가 진행 중인 지역에 군사력을 투입하는 데 정치·법적 부담이 크다. 실제로 정부 내부에서는 전쟁 종료 이후 기뢰 제거 지원이나 조사·연구 목적의 제한적 파견 등이 거론됐지만 이번 회담에서는 구체적인 군사 협력 방안이 공식화되지 않았다.
대신 일본은 경제·에너지 분야에서 대규모 협력안을 제시하며 미국의 요구에 우회적으로 대응했다. 양국은 이날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과 천연가스 발전소 등을 포함한 최대 730억달러(약 109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2차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달 발표된 1차 투자(360억달러)의 두 배를 웃도는 규모다.
세부적으로는 미국 테네시주와 앨라배마주에 SMR을 건설하고, 펜실베이니아주와 텍사스주에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가스 발전소를 짓는 계획이 포함됐다. 일본은 또 미국산 원유를 비축하기 위한 합작회사 설립 의사를 밝히고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개발 협력도 확대하기로 했다.
군사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중시하는 투자·에너지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제공하는 ‘경제적 보상’ 성격이 짙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대응에 대해 “엄청난 지지를 받아왔다”고 평가하면서도 추가적인 역할 확대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계속 내비쳤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