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후폭풍…주요국 중앙은행 통화정책 고심 깊어져
미국 연준·유럽 중앙은행 등 정책금리 인상·인하 다 열어놔
국제유가 급등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호주, 기준금리 인상
중동전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결정에도 중대 변수로 부상했다. 미국과 유럽, 일본 중앙은행을 비롯해 한국은행도 통화정책 결정에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관련기사 21면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이 이번달 통화정책방향을 잇따라 결정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1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행 연 3.50~3.75%로 동결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도 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정책금리를 각각 2.00%, 0.75%로 동결했다. 영국 중앙은행도 현행 3.75%로 동결했다. 다만 호주 중앙은행(RBA)은 지난 17일 기준금리를 기존 3.85%에서 0.25%p 올린 4.10%까지 인상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하는 데서 가장 큰 과제이자 발목을 잡는 부분은 물가 동향이다. 특히 중동정세 악화에 따른 국제유가 급상승이 향후 거시경제 핵심 변수인 인플레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19일 FOMC 회의를 마친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동의 움직임은 단기적으로 에너지 가격과 물가 전체를 끌어 올린다”며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범위와 기간을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이번 중동전쟁은 과거 전쟁 때와 다른 점도 있다. 현재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국제유가도 있지만 미국발 관세에 따른 영향도 있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기업이 관세로 인해 늘어난 부담을 가격에 전가하는 움직임은 약해지고 있다”면서도 “이를 확인하는 데는 6개월쯤 걸리고, 만약 가격을 전가하는 양상으로 흐르면 금리인하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연준은 향후 물가전망치를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 3개월 전망치(2.4%)보다 높은 2.7%로 내다봤다. 연준은 또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적정한 성장이 가능한 중립금리 수준을 3.1%로 추정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도 19일 정책금리 동결후 가진 회견에서 “중동정세에 따른 기조적인 물가 영향과 관련 상방 리스크를 중시하는 금융정책위원이 많다”며 “일시적으로 성장률이 저하하더라도 기조적인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금리인상은 가능하다”고 했다.
ECB도 19일 이사회에서 정책금리를 동결했다. 리카르도 ECB 총재는 “중동 정세에 따른 전망이 극히 불투명하다. 경제성장에서 하방리스크가 생기고 있다”면서 “에너지 가격의 상승을 통해 단기적으로 물가는 중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ECB는 이날 유로권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지난해 12월 전망치보다 0.7%p 높은 2.6%로 예상했다. 올해 유로권 실질GDP 성장률도 같은 기간 1.2%에서 0.9%로 0.3%p 낮췄다.
다수의 중앙은행은 아직까지 이번 국제유가 급등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물가 상승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이에 따라 임금인상 요구가 확산하면 보다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경계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도 이러한 점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통화정책 결정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셈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크게 갖는 데는 2022년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대러 제재와 미중간 충돌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단절이 불러온 인플레이션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연준을 중심으로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최고 5.50%까지 올리는 등 통화정책을 극단적인 긴축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로 기준금리 인하에 발목이 잡혔지만 한편에서는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연준은 지난달 고용통계에서 민간부문의 일자리가 전달 대비 8만6000명 감소하면서 5년 만에 최대치를 보인 점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경기와 고용을 진작하기 위한 금리인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영국도 실업률이 5%를 넘어서 코로나19 펜데믹 때를 빼고는 최근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경기가 악화하고 있다는 징표가 고용통계 등에서 분명해지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에 대한 필요성이 나오지만 물가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일단 동결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파월 의장은 미국 경제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 견해를 피력해 시장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분석도 있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 우려를 하면서도 경기를 낙관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 마크 샌디 무디스 애널리스트는 “국제유가 상승이 수주간 이어지면 경기 후퇴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2022~2023년 거의 모든 이코노미스트가 경기 후퇴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민간고용 증가율이 후퇴했지만 실업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정부와 마찰도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진작부터 큰폭의 금리 인하를 압박해왔고, 일본도 다카이치 총리가 우에다 총재와 만나 추가 금리인상에 대해 신중한 결정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신문은 “시장 일각에서는 일본은행이 다카이치 정권과 관계를 의식해 금리 인상 시기가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고 분석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