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리얄화 폭락하자 ‘천만 단위 지폐’ 찍어냈다
고물가로 화폐기능 붕괴
1천만리얄=7달러 불과
이란이 자국 통화 리얄 가치 급락 속에 ‘천만 단위’ 초고액권을 발행하고 시중 유통을 시작했다. 중동 전쟁과 제재, 외환 부족이 겹치며 현금 수요가 급증하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2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이란 은행들은 지난주부터 해당 지폐 배포를 시작했다. 1000만리얄권은 발행 당시 환율 기준으로 약 7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현금자동입출금기 앞에 길게 줄을 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 현금기기는 빠르게 현금이 동나거나 인출 금액이 제한되는 상황까지 나타났다. 전쟁으로 금융 인프라가 타격을 입으면서 현금 선호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80세 주민 마리암은 FT에 “한 시간 기다렸는데 직원이 1000만리얄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돈이 없다고 항의하자 3000만리얄을 받았다”면서 “많은 돈은 아니지만 카드 사용이 제한될 경우 며칠은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이란 경제 전반의 불안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동 전쟁이 4주째로 접어들면서 주요 은행과 기반시설까지 공격 대상이 되었고, 항공로 폐쇄와 무역 경로 차단으로 수입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서 국내 물가 전반에도 상승 압력이 전이되는 모습이다.
물가 상승 압력은 이미 높은 수준이다. 이란 통계당국에 따르면 2월 기준 연간 물가 상승률은 47.5%에 달한다. 특히 음식과 음료 가격 상승률은 10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필수 식품 가격 급등은 저소득층의 생활 부담을 크게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화 가치 하락도 이어지고 있다. 리얄화는 최근 달러당 166만리얄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가, 이후 약 150만리얄 수준으로 일부 반등했다. 다만 변동성이 큰 흐름이 지속되면서 통화 신뢰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다.
이란 중앙은행은 이번 조치에 대해 “현금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직불카드와 모바일·인터넷 뱅킹 등 전자결제 수단이 계속 주요 거래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현금 확보를 우선시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며 정책 효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이란은 지난해 11월 향후 5년에 걸쳐 리얄에서 0을 4개 줄이는 법안을 도입했다. 이번 고액권에는 이를 반영해 ‘1000’ 표기가 함께 병기됐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경제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금 수요 증가와 통화 가치 변동이 맞물리며 이란 경제의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