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급불능’ 논란…재무제표 해석 충돌
자산 6조 vs 부채 47조
재무부 자료 해석 공방
미국 정부가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에 놓였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재정 건전성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하고 있다.
논란은 스티브 H. 행크와 데이비드 M. 워커가 3월 23일(현지시간) 경제매체 포춘에 기고한 글에서 촉발됐다. 두 사람은 미 재무부의 2025 회계연도 통합 재무제표를 근거로 자산 6조600억달러 대비 부채 47조7800억 달러라는 점을 들어 “회계적으로 이미 자본잠식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논지는 단순한 부채 규모가 아니라 ‘해석 기준’에 있다. 기업 회계 기준을 적용하면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상태는 지급불능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보장과 메디케어 등 장기 의무를 포함하면 해당 수치는 재무부 사회보험 명세서(SOSI) 기준 약 88조달러에 이르며 이를 공식 부채와 합산하면 총 136조달러를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수치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5배 수준이다. 또 미국 회계감사원이 연방 정부 재무제표에 대해 29년 연속 의견거절(disclaimer)을 낸 점도 재정 투명성 문제의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급불능’ 규정은 주류 경제학계와 정책 당국의 평가와는 거리가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국가 재정은 기업과 달리 통화 발권력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세수·금리·통화정책을 통해 채무를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 근거다.
특히 사회보장과 메디케어는 법·정책에 따라 조정 가능한 장기 지출로 기업의 확정 부채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미국 국채는 여전히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시장이 미국의 지급불능을 현실적 리스크로 반영하고 있다는 징후는 뚜렷하지 않다.
기고문은 “언론이 이 사실을 놓쳤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논쟁은 새로운 재무정보의 공개라기보다 기존 자료를 어떤 기준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시각 차이에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재무부 보고서 자체는 이미 공개돼 있었으며 쟁점은 ‘국가 재정에 기업식 지급불능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가’에 있다. 언론이 대대적으로 다루지 않은 배경도 이러한 해석 논쟁의 성격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이번 문제 제기는 정책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행크와 워커는 같은 기고문에서 초당적 재정위원회 설치(미 의회 HR 3289 법안)와 균형재정 헌법 개정(하원 결의안 15호)을 해법으로 제시하며 미국 재정이 구조적 위기 단계에 진입했다고 경고했다.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확대,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 군사·외교 비용 확대 등이 맞물리면서 장기 재정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재무부 장기 재정 전망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결국 이번 논쟁은 미국이 실제로 파산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재정 위험을 어떻게 정의하고 인식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급불능을 선언한 사실은 없으며, 재무부 역시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재무부 통합 재무제표와 사회보험 장기 추계가 보여주듯 장기 재정 구조의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로 평가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