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서관 개관6개월째
세상에 없던 도서관, 문화·여가 공간으로
다양한 인공지능 서비스로 디지털 격차 줄인다 … 이용자 자치협의회 구성해 시민 목소리 들어
경기도가 ‘세상에 없던 도서관’을 주제로 9년여 준비 끝에 경기도서관을 선보인 지 6개월째다. 경기도서관은 책을 읽는 공간을 넘어 인공지능(AI)과 기후환경, 사람 중심의 경험을 결합한 새로운 공공도서관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특히 공부를 하러 도서관을 찾는 기존 이용자뿐 아니라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던 시민들까지 끌어들이는 ‘누구나 놀러올 수 있는, 시끄러운 도서관’으로 주목받는다. 23일 경기도서관을 탐방하고, 실험의 현장과 의미를 짚어봤다.
경기도서관의 특징 중 하나는 인공지능 도서관이라는 정체성이다. 지하 1층에 조성된 인공지능 스튜디오는 일반 이용자가 접하기 어려운 유료 서비스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약 8개 플랫폼, 60여개 이상의 인공지능 모델을 활용할 수 있으며 고사양 장비를 갖춰 영상 제작 등 창작 활동이 가능하다.
◆인공지능으로 독서토론·독서치유 = 특히 이 공간은 단순 체험을 넘어 디지털 격차 해소 기능을 전면에 내세운다.
조영희 경기도서관 사서는 “인공지능이 일상화된 시대에 인공지능에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 취약계층에게 AI를 쉽게 이해하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 중요하다”며 “고령층을 대상으로 1대1 맞춤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령층 대상 인공지능 교육은 “무료한 일상에 큰 변화가 됐다”는 반응을 얻고 있으며 사진 복원이나 십자수 도안 제작 등 실생활 중심 교육이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지점은 ‘공공 인공지능’에 대한 안전한 설계다. 경기도서관은 학습되지 않는 인공지능을 도입해 이용자가 입력한 정보가 저장되거나 학습되지 않도록 했다. 이용 종료 후엔 데이터가 자동 삭제되도록 설계했다. 인공지능 활용을 장려하면서도 개인정보 보호와 윤리 교육을 병행하는 구조다.
경기도서관은 인공지능을 독서와 결합한 새로운 서비스도 적극 실험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공지능 독서토론’이다. 이 프로그램은 인공지능과 독서지도사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용자가 책을 읽고 의견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이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반론을 제시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며 토론을 확장한다.
저작권 문제를 고려해 고전 중심으로 운영되며 독서토론이 익숙하지 않은 이용자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경기도서관은 어린이의 그림을 통해 심리를 읽어내고 책을 추천해주는 인공지능 독서치유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인공지능 마음그림×책’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된다. 어린이가 자유롭게 그린 그림을 인공지능이 분석해 정서 상태를 파악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경기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적합한 도서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이용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의 부모들은 “우리 아이를 잘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이며 추천 도서를 찾아 읽곤 한다. 또한 경기도서관에는 오목을 두는 인공지능 로봇이 있어 어린이들이 로봇과 함께 인공지능을 체험하고 있다.
◆기후환경 도서관과 공간 실험 = 개관 당시부터 경기도서관은 ‘기후환경 도서관’을 내세우고 있다. 단순히 관련 도서를 비치하는 수준을 넘어 기후위기를 ‘행동하는 의제’로 전환하는 공간을 지향한다. 건물 설계 단계부터 에너지 절감 구조를 적용했고 기후환경 라운지와 공방 등을 통해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공간 구성 역시 기존 도서관과 다르다. 자료실 중심 구조 대신 전체 층이 나선형으로 연결된 개방형 구조를 채택했다. 정숙을 전제로 한 공간이 아니라 교류와 체류 중심 공간으로 설계됐다. 이로 인해 이용 방식도 달라졌다. 윤명희 경기도서관 관장은 “가족 단위 방문이 많고 혼자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연인이나 친척 등 다른 사람과 동반해서 이용하는 비율이 70%에 가깝다”며 “금요일부터 이용자가 늘어 주말에는 하루 7000명 수준까지 증가한다”고 말했다.
도서관이 공부 공간에서 문화·여가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비이용자가 이용자로 = 개관 이후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이용자 구성의 변화다. 기존 도서관 이용 경험이 없는 시민들, 즉 비이용자가 유입되고 있다. 만족도 조사에서는 88점 이상의 높은 평가가 나왔고, 재방문 의향도 96% 이상으로 나타났다.
윤 관장은 “도서관에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이 방문하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다만 변화는 논쟁도 동반했다. 자료실 구분이 없고 소음이 발생하는 구조에 대해 일부 이용자는 “도서관답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러 반응들에 귀를 기울이는 방안으로 경기도서관은 ‘이용자 자치협의회’를 구성했다. 집중·교류·동행·휴식 등 이용 목적별로 이용자들을 나누고, 이용 규칙을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다양한 세대들이 함께 하며 서로의 이용 목적과 방법을 공유하며 규칙을 만든다.
◆‘그린 인공지능 공론장’ 지향 = 경기도서관은 경기도의 광역대표도서관으로 정책 도서관 기능도 수행한다. 도서관 등록과 평가 등 법정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도내 31개 시군 도서관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정책을 도출하는 방식의 변화다. 기존에는 공문 중심 행정이었다면 앞으로는 현장 경험과 이용자 요구를 기반으로 정책을 만들어 확산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정책 거버넌스와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 중이다.
경기도서관은 향후 방향을 ‘그린 인공지능 공론장’으로 설정했다. 인공지능과 기후환경을 중심으로 도민이 참여하는 토론과 실천의 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윤 관장은 “인공지능과 환경은 이미 경기도 내 각 부서에서 진행 중인 정책이지만 이를 모아 논의하고 확산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도서관이 그 역할을 하려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수원=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