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보다 비싸고, 슬럼 거주자는 10억명”

2026-03-27 13:00:08 게재

아시아 주요 도시 ‘주거난 폭탄’ 영국 이코노미스트 집중 분석

아시아 주요 도시들이 급격한 도시화의 그늘 속에서 ‘주거 위기’라는 구조적 난제에 직면하고 있다. 인구는 빠르게 유입되지만 적정 가격의 주택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슬럼 확대와 집값 급등이 동시에 진행되는 ‘이중 압박’이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5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아시아 도시의 최대 문제는 교통이나 오염이 아니라 ‘살 만한 집의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남아시아 도시화율은 약 35%로 북미(80%)에 비해 여전히 낮아 향후 도시 인구 유입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상황도 이미 심각하다. 아시아에는 전 세계 슬럼 거주자 11억명 중 절반 이상이 집중돼 있으며, 도시 인구의 40% 이상이 전력·수도 부족, 과밀, 비정형 구조 등 ‘비적정 주거’ 환경에 놓여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주택 부족 규모 역시 압도적이다. 필리핀은 약 700만채, 인도네시아는 2700만채, 인도는 최대 4700만채의 주택이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격 측면에서도 시장은 왜곡돼 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는 양질의 주택 가격이 가구 중위소득의 20배 수준으로 런던 메이페어나 뉴욕 맨해튼보다도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국제 기준에서 ‘적정 주거’는 통상 소득의 5배 이하인데 이를 4배 이상 초과한 셈이다.

주거난은 경제 전반에 부정적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반대로 주거 환경 개선은 강력한 경제적 효과를 동반한다. 해비타트 연구에 따르면 슬럼을 양질의 주택으로 대체할 경우 기대수명은 4% 늘고, 학교 출석률은 28% 증가하며, 지역 GDP는 최대 10%까지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은 공급 구조의 왜곡이다. 도시 계획 규제는 대표적 병목으로 지목된다. 과밀을 방지하려는 취지지만 실제로는 공급을 제한해 슬럼 확산을 부추기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다.

개발업자들의 행태도 문제다. 고급 주택이 더 높은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에 민간 자본은 자연스럽게 고가 시장에 집중된다. 캄보디아 프놈펜과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외국 자본 유입으로 고급 콘도 건설이 급증했지만 상당수는 공실로 남아 실제 주거 문제 해결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 시스템 역시 취약하다. 아시아에서는 비공식 경제 종사자가 많아 주택담보대출 접근성이 낮다. 실제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주택대출 규모는 GDP 대비 10% 미만으로 선진국(50% 이상)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정부의 직접 개입도 제한적이다. 인도의 수요 대비 공급 규모는 턱없이 부족하며, 필리핀 정부 역시 당초 600만채 공급 목표를 100만채 수준으로 낮추며 한계를 인정했다.

아시아 도시의 미래는 주거 문제 해결 여부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보고서는 “주거의 질은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가장 직접적인 정책 성과”라며 “주택 문제를 해결한 정부는 경제 성장뿐 아니라 정치적 신뢰까지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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