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관리사, 부유층 ‘탈출 작전’까지 맡았다

2026-03-31 13:00:01 게재

전쟁 격화 속 VIP 대피 지원 확대

보안·항공 이동에 이주까지 총동원

중동 전쟁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자산관리사들이 고객 자산이 아닌 ‘사람’을 직접 빼내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단순한 투자 자문을 넘어 사실상 ‘탈출 지원 서비스’로 영역이 확장되는 모습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자산관리사들이 중동 지역 부유층 고객을 전쟁 지역 밖으로 대피시키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자산관리회사 크레셋은 최근 몇 주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고객들을 실제로 이동시킨 사례를 보유하고 있다.

수지 크랜스턴 크레셋 최고경영자(CEO)는 “이런 상황은 여러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며 “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고객들이 빠져나오기 어려운 지역에서 나오도록 도와야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자산관리 사업의 역할이 크게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투자·세무 중심 서비스에서 벗어나 보안, 이동, 거주 이전까지 포함하는 ‘생활 전반 관리’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일부 자산관리사는 전직 정보기관 요원까지 포함된 보안 네트워크를 활용해 고객 탈출을 지원하고 있다. 크랜스턴 CEO는 “여러 보안 파트너와 협력하고 있으며, 전직 CIA 요원 등이 포함된 전문 업체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자산관리회사 알펜파트너스는 두바이와 이스라엘 등지에서 약 30명의 고객과 가족을 이동시켰다. 피에르 가브리스 창립자 겸 대표는 “개인 전용기와 상업 항공편을 통해 중동을 떠나는 이동을 지원했다”며 “현재는 전용기 운항이 제한되면서 더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고객은 단기 피신이 아니라 장기 이탈을 고려하고 있다. 가브리스 대표는 “한 고객은 최소 2년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피 방식도 점점 조직화하고 있다. 전쟁 초기에는 UAE 영공이 폐쇄된 상황에서도 민간 전용기를 확보해 탈출을 지원했고, 이후에는 상업 항공편 좌석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일부 고액 자산가는 오만 무스카트까지 육로 이동한 뒤 전용기를 통해 유럽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보안·긴급 대응 회사 글로벌 가디언은 이란 공습 이후 4200명 이상을 중동 밖으로 대피시켰으며, 이 중 약 40%는 자산관리사나 패밀리오피스를 통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데일 벅너 최고경영자는 “UAE에 집이나 별장을 둔 초고액 자산가들을 다수 대피시켰다”며 “두바이가 주요 탈출 거점이었다”고 말했다.

자산관리사들은 단순 이동뿐 아니라 이후 정착까지 지원하고 있다. 스위스 거주 허가 취득, 주거지 확보, 자녀 학교 연결 등 이주 전반을 관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중동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자산관리 산업이 ‘돈 관리’를 넘어 ‘안전 관리’까지 맡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액 자산가 시장의 경쟁 양상도 크게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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