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아시아 식량 체계까지 흔든다
“휴전에도 공급망 불안 지속”
“유가·비료·물류 삼중 충격”
중동 전쟁의 충격이 에너지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식량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핵심 식량 생산지인 베트남에서 생산·가공·유통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세계 식량 공급망이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베트남 메콩강 삼각주 현지 르포를 통해 “중동 전쟁으로 촉발된 연료·비료 가격 급등이 쌀 산업을 사실상 마비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세계 2위 쌀 수출국 베트남의 핵심 생산지인 동탑성 일대에서는 수확된 쌀을 실은 바지선들이 강 위에 멈춰 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력 요금이 급등하면서 대형 제분소가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는 “전쟁이 총알이 아닌 가격으로 농업을 멈추게 한 사례”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삼중 충격’이다. 첫째, 중동발 에너지 공급 불안으로 디젤 가격이 급등했다. 둘째, 비료 가격이 폭등했다. 특히 질소 비료의 핵심 원료인 요소 가격은 2026년 들어 70% 이상 상승했다. 셋째, 해상 물류 차질이 겹치며 수출 경로 자체가 막히고 있다.
세 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생산과 유통이 모두 위축되는 ‘공급망 동시 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농민들 반응은 즉각적이다. 메콩강 유역의 농자재 판매상은 NYT 인터뷰에서 “지금 작물을 심는 것은 돈을 땅에 묻는 것과 같다”며 파종 포기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일부 농가에서는 5월 파종 계획을 취소하거나 비료 구매 자체를 중단하는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 일시적 생산 감소가 아니라 향후 수확량 급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선행 신호로 해석된다.
여기에 물류 문제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시장은 더 큰 혼란에 빠지고 있다. NYT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한 유조선과 화물선들이 누적되면서 해상 운송이 병목 상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현재 일부 항로에서는 선박들이 연료 절약을 위해 속도를 늦추면서 배송이 10~15일 지연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인도산 바스마티 쌀은 중동 항로에서 정체됐고, 필리핀에서는 디젤 부족으로 내륙 운송 자체가 불확실해진 상황이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역설적인 가격 왜곡도 나타난다. 생산 비용은 급등했지만 물류 차질로 재고가 쌓이면서 단기 도매 가격은 오히려 하락하는 ‘비정상적 디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일시적 현상으로 본다. 싱가포르 ISEAS-유소프 이샤크 연구소의 식량안보 전문가 폴 텡은 NYT 인터뷰에서 “이 같은 복잡한 공급망 붕괴는 결국 더 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특히 저장이 어려운 채소·과일 등 신선식품은 가장 먼저 가격 급등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의 구조적 취약성도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NYT는 “아시아는 석유와 비료를 중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전쟁 충격에 특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