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확산에도 고용유지 … 다만 청년 ‘진입 붕괴’ 현실화
APEC 미래 일자리 포럼서 확인된 구조 변화 … “전환기, 고용감소 여부보다 전환 관리가 핵심”
전체 일자리는 줄지 않았지만 노동시장에 진입할 기회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생산성을 높인 기업들이 기존 인력을 유지하면서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 지표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청년층의 진입 기회는 좁아지는 ‘보이지 않는 구조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
고용노동부가 6일 개최한 ‘APEC 미래 일자리 포럼’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확인됐다. 노세리 한국노동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포럼에서 “인공지능은 직업 전체가 아닌 직무를 구성하는 과업 일부를 대체·조정하는 수준”이라면서도 “이 같은 변화가 누적될 경우 노동 대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기업의 71%는 전체 업무 중 약 10%를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아직 대체가 없다는 응답은 17.2%, 11~30% 수준까지 대체가 진행됐다는 응답은 11%였다. 이는 인공지능 도입이 전면적인 고용 축소가 아닌 ‘부분 대체’ 형태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고용 충격은 총량보다 진입 구조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노 실장은 “20~30대 청년 가운데 인공지능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서는 고용 증가가 사실상 멈춘 상태”라며 “충격이 신규 진입 단계에 집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연령대별 분석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됐다. 인공지능 도입이 본격화된 2023년 이후 20~30대 청년층에서 고용 감소가 두드러졌고, 특히 인공지능 고노출 직종에서는 고용이 정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총고용은 유지되지만 신규 진입 경로가 좁아지는 ‘총량의 함정’이 나타나고 있다. 고용 지표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취업 기회는 줄어드는 이중 구조다.
◆고용 유지 속 진입 줄어든 ‘총량의 함정’ = 이 같은 변화는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직접 줄이기보다 노동시장 ‘입구’를 좁히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은 추가 인력 없이도 생산을 유지·확대할 수 있어 신규 채용을 늘릴 유인이 약해지고 있다.
기업의 인력 운용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인공지능 도입 이후 동일 인력으로 업무를 확장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기업은 인건비 증가 대신 기술 투자로 대응하고 있다. 이는 채용 수요 감소로 이어진다.
일부에서는 인공지능의 실제 성과보다 기대 수준을 기준으로 인력 운용을 조정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하기 전에 기대에 따른 채용 축소가 먼저 발생하는 구조다.
또한 인공지능은 업무를 기능 단위로 분해해 일부를 대체한다. 기업은 직무 전체가 아닌 필요한 기능만 내부에서 흡수하면서 직무 단위 채용 자체를 줄이고 있다. 하나의 직무가 여러 기능으로 쪼개지고 일부가 자동화되면서 채용 감소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직무는 쪼개지고 채용은 줄어든다 = 이 같은 흐름은 경기 요인과는 다른 구조적 변화다. 생산방식 변화에 따른 채용 축소이기 때문에 한 번 줄어든 채용 수요가 다시 회복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포럼 기조연설에 나선 안젤리카 살비 델 페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노동·사회 분야 선임 자문관은 “인공지능 전환기에는 고용 감소 여부보다 전환 관리가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고령화로 노동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은 생산성 유지를 위한 현실적 대응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노동 공급 감소와 기술 도입이 맞물리면서 노동시장 구조 변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통계와 체감의 괴리를 낳는다. 고용은 유지되지만 취업은 더 어려워지는 구조다. 충격이 ‘총량’이 아니라 ‘진입 구조’에서 먼저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고학력 청년층이 먼저 영향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 노출도가 높은 사무·분석 직무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경력직 선호를 강화하면서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이 지연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이는 대신 기존 인력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거나 외주·플랫폼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정규직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진다.
대학 교육과 노동시장 간 연결구조도 약화되고 있다. 학력 중심의 진입 경로가 더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성장과 고용 분리…구조 변화 본격화 = 이 같은 변화는 노동 수요 구조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은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하고 있으며, 생산 증가가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과거 ‘성장-고용 연동’ 구조는 약화되고 있다. 인공지능 도입 이후 생산이 늘어나더라도 고용이 반드시 증가하지 않는 ‘성장-고용 분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시장 내부에서도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고용 규모가 유지되더라도 임금 상승률은 둔화되고, 정규직 대신 계약직·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는 등 고용의 질 변화가 동반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격차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 활용 여부에 따라 기업 간 생산성 차이가 벌어지고 이는 임금과 고용 안정성 격차로 연결되고 있다. 특히 중간 숙련 노동자의 역할 축소는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정책 대응 방향도 변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통해 일자리 변화를 사전에 관측하고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산업별·직무별 인공지능 영향 분석을 정례화하고 고용 변화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겠다는 구상이다.
전직이 필요한 노동자에게는 직업훈련과 재취업 지원을 연계하고 ‘고용24’를 통해 일자리 이동을 지원하고 있다. 재직자와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인공지능 교육 확대와 평생학습 기반 직무 전환 체계도 병행되고 있다.
노사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고용 문제를 조정하고 고용보험과 직업훈련을 연계해 소득 공백을 줄이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책 대응 속도는 기술 변화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청년층과 중간 숙련 노동자에 대한 선제 대응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다. 전환 관리로 정책 초점이 이동했지만 현장에서는 사후 대응 중심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산업 현장에서는 변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 포스코는 제철 공정에 인공지능을 도입해 고위험 작업을 자동화했고 효성ITX는 상담 업무를 인공지능 중심으로 재편했다. 공공부문 역시 노동감독과 상담, 구인·구직 매칭 등에 인공지능을 도입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일자리를 단번에 없애기보다 일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이 특정 집단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기업은 생산성을 높이고 기존 노동자는 유지되지만 신규 채용 감소의 부담은 청년층에 집중되고 있다.
결국 쟁점은 일자리 규모가 아니라 기회 배분 구조다. 인공지능 시대 노동시장은 이미 방향을 바꾸고 있다. 일자리는 유지되지만 진입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일자리를 없애지 않는다. 대신 노동시장에 들어가는 방식과 순서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 새로운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장세풍 한남진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