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드코드’<전력망 기술기준> 강제력 없고 자가용 발전은 규제 사각지대
전압 이상 사전 검증할 시뮬레이션 체계 구축
주파수 제어 관련 재생에너지 역할 명시 필요
“북미에서는 데이터센터가 계통(그리드)을 흔들 만큼 전력 수요를 폭발적으로 키우고 있다. 대한민국도 이 문제를 놓쳐서는 안 된다. 미국 텍사스에는 발전·송전·수요자 등 다양한 참여자가 계통 운영을 감시하고 검증하는 거버넌스인 ‘텍사스RE(TRE)가 있는데, 우리도 이러한 형태로 전력감독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허 진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14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전력 거버넌스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TRE는 북미전력신뢰도위원회(NERC) 산하 6개 지역 신뢰도 기관 중 하나다. 텍사스 전력계통 운영기관(ERCOT) 지역의 전력계통 신뢰도 기준 준수 여부를 감시·집행한다. 계통은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송전선·변전소·배전망을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전력 흐름 네트워크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보급 목표를 조기 달성하고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 이상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재생에너지가 늘수록 전통 발전기 관성이 사라져 계통이 불안정해지므로 이를 대체할 안정화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태양광 등은 관성이 없고 출력이 불규칙해서 전력망 기술기준인 ‘그리드코드’로 인버터 동작 방식 등을 세밀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계통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고속도로에 속도 제한·진입 규칙이 없으면 사고가 나듯 전력망에도 모든 참여자가 지켜야 할 공통 규칙인 그리드코드가 필요하다. 인버터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생산한 직류(DC) 전기를 계통에서 사용하는 교류(AC)로 변환해 주는 장치다.
문제는 이미 존재하는 그리드코드조차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송승호 광운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발전사업허가 뒤 한국전력 설비 이용계약을 마친 뒤 실제 준공까지 5년 이상 걸리면서 그리드코드가 미적용 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발전소별로 그리드코드를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종합 점검과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드코드 개정과 적용 시기가 맞지 않고, 발전사업자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리드코드 미이행 시 처벌 규정도 없어 사실상 강제력이 없는 상태다.
송 교수는 “태양광이 늘수록 전압이 예측 불가하게 출렁이지만 이를 미리 검증할 시뮬레이션 체계도 실시간 감시 체계도 부족하기 때문에 대책이 필요하다”며 “나아가 주파수 제어와 관련해서 재생에너지의 역할을 그리드코드에 명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압 문제는 지역 혹은 설비 구성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어느 지점에 태양광이 얼마나 붙으면 전압이 얼마나 튀는지, 어떤 상황에서 인버터가 탈락하는지 등 실제 계통 데이터로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야 대비할 수 있다. 또한 태양광·풍력 발전기가 비정상적으로 탈락할 경우 발전사업자에게 보고 의무를 부여하고 합성관성·주파수-유효전력 제어 기능을 활용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최홍석 전력거래소 계통혁신처장은 “전력설비는 일반용·사업용·자가용으로 나뉘는데, 자가용은 사업 목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리드코드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며 “과거엔 자가용 발전기 규모가 작아 문제가 없었지만, 최근 태양광·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이 자가용 형태로 급증하면서 계통에 영향을 주는 상황인데 규제는 받지 않는 사각지대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발전원 확충도 중요하지만 수요자원·부하자원 등 유연성 자원을 제도적으로 준비하는 것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력망의 하드웨어를 키우는 것만큼 이를 안전하게 운영할 소프트웨어인 거버넌스를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수요자원은 전력 소비자가 사용량을 줄이거나 조절하는 행위를 발전자원처럼 취급해 전력시장에서 거래하는 자원이다. 부하자원은 수요자원 중 전력시장에 정식 등록돼 급전지시를 받고 정산할 수 있는 단위를 말한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