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노동행정의 지방시대를 열자
6.3 지방선거를 48일 앞두고 대진표가 얼추 윤곽을 갖춰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17개 광역단체장과 226개 기초단체장 후보 공천을 이달 내 마무리할 계획이다. 조만간 중앙당 차원의 공약도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사실 선거철마다 지역개발 공약은 넘쳐났다. 하지만 노동문제와 관련된 공약은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다르다. 단순한 지역일꾼 선출을 넘어 노동행정의 중심이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이동하는 ‘노동의 지방시대’를 열 때가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동행정은 중앙정부의 고유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지방정부는 일자리 사업이나 복지정책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산업재해와 노동권 침해가 주로 지역현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중앙 중심의 행정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제는 지방정부가 직접 책임지고 대응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 됐다는 얘기다.
경기도가 보여준 지방 노동행정의 실효성
지방정부가 노동행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는 경기도 사례가 잘 보여준다. 경기도는 2019년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노동국’을 신설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공정한 세상’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는 중앙행정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새로운 시도였다.
경기도는 산재 대응과 노동권 보호 정책을 체계화하며 가시적 성과를 냈다. 지난해 전국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는 605명으로 전년보다 16명 증가했지만 경기도는 전년(184명)에 대비해 58명이나 줄었다. 여전히 126명으로 높은 수준이지만 광역지자체 가운데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한 것이다. 전국 사업장의 25%인 77만개, 노동자의 25%인 538만명이 몰려 있는 경기도에서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같은 변화는 ‘노동안전지킴이’ 운영 등 소규모 사업장 중심의 현장밀착형 정책에서 비롯됐다. 50인 미만 사업장을 상시 점검하고 개선을 지도하는 체계를 통해 중앙행정의 손이 닿지 않던 영역까지 관리가 이뤄졌다. 이는 지방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현장의 실질적인 생명보호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노동행정의 지방시대를 열 제도적 변화도 뒤따르고 있다. 국회는 3월 12일 ‘노동감독관 직무집행법’을 개정해 3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감독권한을 광역 시·도지사에게 위임했다. 노동감독관은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위반 사항을 수사하는 핵심 인력이다. 그 권한 일부가 지방으로 이양된 것은 노동행정 체계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문제는 준비상태다. 상당수 광역지자체는 여전히 노동행정을 복지의 일부로 취급하거나 최소한의 인력만 배치해 형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감독권한은 확대됐지만 이를 수행할 전문 인력과 예산, 정책역량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 자칫 지역 간 노동행정 수준 격차가 새로운 불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제 공은 지방선거에 나선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들에게 넘어갔다. 그동안 지방정부의 노동정책 공약은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일부 공약은 선언적 수준에 그치거나 기존 정책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이제는 그런 관행을 끊어야 한다. 각 정당은 중앙당 차원에서 노동행정의 지방시대를 열 공약을 개발해야 하고 각 후보들도 이와 관련해 보다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첫째, 노동행정을 전담할 조직과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단순한 부서 신설을 넘어 산업안전과 노동권 보호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체계를 갖춰야 한다. 둘째, 지역 특성에 맞는 고용노동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제조업 중심 지역과 플랫폼 노동이 확산된 대도시는 서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노사민정협의회 등 사회적 대화 기구를 상설화해 지역 맞춤형 노동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넷째, 중앙정부와의 협력 구조를 정교하게 구축해야 한다. 특히 권한 이양이 책임 전가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 설계와 재정 지원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노동공약, 각 후보의 진정성 가늠자 될 것
노동은 시민 삶과 직결된 핵심 민생영역이다. 특히 안전한 일터 조성과 취약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는 지역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제시되는 노동공약은 각 후보가 그리는 ‘지방시대’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더 이상 노동행정을 중앙정부의 몫으로 남겨둬서는 안된다.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새로운 노동행정 체계를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정치권과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전향적인 인식과 실행력 있는 공약을 기대한다.
한남진 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