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 ‘거북이걸음’…글로벌 공급망 경쟁력 약화 우려”
정부의 기후금융·밸류업 정책과 충돌 … ‘ESG 정보 공백 장기화’
자산 5조원 이상으로 대상 확대 … 법정 공시 직행 등 개선 필요
금융위원회가 제시한 ESG 공시 로드맵 초안이 주요국 대비 크게 뒤처져, 투자자 신뢰 저하와 글로벌 공급망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 정부의 기후금융과 밸류업 정책과도 충돌하며 국제적 정합성에도 배치된다. 기업의 ESG 정보 공백 장기화로 글로벌 투자자의 자본 이탈과 고객사의 공급망 제외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국제적 정합성 갖출 ‘골든타임’ 놓칠 우려 =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이하 포럼)은 지난 2월 금융위가 발표한 ESG 공시 로드맵 초안의 핵심 쟁점을 주요국 및 공급망 경쟁국과 비교하고,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한 ‘KoSIF 이슈 브리프’를 15일 발간했다.
포럼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의 ESG 공시 로드맵 초안은 공시 시기, 공시 대상, 스코프 3(Scope3), 공시 채널, 제3자 인증 등 모든 면에서 주요국 및 우리나라의 공급망 경쟁국들보다 크게 뒤처져 있으며, 당초 공시 로드맵 설계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던 ‘국제적 정합성’과 ‘정보 유용성’ 등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난 2021년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된 로드맵(안)보다도 더 후퇴한 안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포럼은 금융위의 로드맵 초안이 국제적 정합성과 정보 유용성 등의 기본 방향에도 대체로 부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먼저 금융위는 로드맵 초안을 설계한 대외적 환경의 사례로 유럽연합(EU)의 옴니버스 패키지를 통한 규제 완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의무공시 추진 중단 등을 대표적으로 거론했다. 하지만 EU의 경우 옴니버스 패키지가 2025년 말 최종 승인된 이후, 법제화 추진이 이루어지고 있다. 포럼은 “EU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ESG 관련 법·제도 등이 구축되어 있으며, 옴니버스 패키지는 정책 기조의 후퇴가 아닌 시행 과정 중에 속도 조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역시 연방 차원의 규제 진행이 지연되고 있는 것과 별개로,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뉴욕, 일리노이주 등이 캘리포니아를 벤치마킹, 주 정부 차원의 공시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또 주요국들은 이미 논의 단계를 넘어 ESG 공시를 법제화하거나 시행 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포럼은 “EU나 미국 연방의 사례를 놓고 단순한 규제 완화 또는 보류로 해석할 경우, 글로벌 공시 규제의 실제 속도와 강도를 오판할 가능성이 있다”며 “나아가 ESG 후발주자인 우리나라가 글로벌 정합성을 갖출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투자자 관점에서도 주요국 및 공급망 경쟁국보다 뒤처진 ESG 공시는 국내 기업의 정보 공백으로 인한 투자자 불신을 초래할 우려가 높다. 이에 따라 국제적인 ESG 자본이 ESG 공시가 투명한 국가의 경쟁기업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한 자본 유입이 줄고,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
◆주요국 2030년 안에 공시계획 완료 = 금융위는 당시 국제적인 동향 등을 고려해 연결 자산총액 30조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2028년(FY2027)부터 기후공시를 의무화하는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우선 한국거래소 공시를 일정 기간 시행하고 향후 법정공시인 사업보고서 공시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포럼에 따르면 주요국들의 최초 공시 시기는 우리나라보다 빠른 2025년(FY2024) ~ 2027년(FY2026)에 집중돼 있다. 최초 공시 대상 기업 수도 우리나라와 비교해 훨씬 많고, 공시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2030년 안에는 공시계획이 완료되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연합(EU)은 2025년부터 약 1만1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CSRD(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 의무화에 돌입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호주는 올해 각각 4000개와 700개 기업이 의무화 대상이다.
영국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반 의무 공시를 우리나라와 같이 2028년(FY2027)에 시행한다. 하지만 영국은 이미 2023년부터 TCFD(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기반으로 의무화를 시행해 오고 있다. ISSB 기반 최초 공시 대상 기업 수는 약 600개 정도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글로벌 공급망 주요 경쟁국인 일본 중국 대만 인도와 비교해도 현저히 뒤처진다는 점이다.
중국은 2026년(FY2025)에 약 450개 기업이 공시 의무화를 시작한다. 인도는 이미 2023년(FY2022)에 1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공시가 시작됐다. 일본과 대만은 2027년(FY2026)에 각각 약 70개와 120개가 대상이다. 특히 프라임 시장 상장사로 시가총액 3조엔 이상부터 2027년에 최초 공시를 시작하는 일본은 2028년(FY2027)에는 1조엔으로 기준을 적용해 340여개로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2028년에 최초 공시 대상 기업 수는 58개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금융기관 중심으로 24개 기업이 금융 업종이다.
포럼은 “ESG 공시가 뒤처진다는 것은 곧 글로벌 공급망 경쟁에서 위 국가들과의 경쟁우위 확보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며 “국내 기업 상당수가 장기간 ESG 정보의 공백에 놓여, 글로벌 투자자의 자본 이탈과 고객사의 공급망 제외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스코프 3 공시, 3년 유예 핵심 문제 = 온실가스 배출의 75~80%를 차지하는 스코프 3(Scope 3) 공시를 3년 유예한 점도 핵심 문제로 지적됐다. 주요국은 대부분 1년 내외의 유예 기간을 설정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2031년까지 유예를 허용하면서 글로벌 기준과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코프 3은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하는 간접배출로, 기후 리스크와 재무적 영향 평가의 핵심 지표다. 글로벌 투자자와 고객사는 이미 해당 정보를 요구하고 있어, 공시 지연은 기업의 실질적 대응을 늦추는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 국내에서도 스코프 3 공시 역량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에 스코프 3을 보고한 국내 기업은 2023년 127개에서 2025년 222개로 증가했으며, 주요 기업들은 전체 15개 카테고리 중 절반 이상을 이미 산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 방식도 논란이다. 금융위는 초기 단계에서 거래소 공시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주요국은 대부분 사업보고서 기반의 법정 공시를 채택하고 있다. 거래소 공시는 법적 책임이 상대적으로 낮고, 허위 공시에 대한 제재도 제한적이다. 특히 손해배상 책임 입증 구조가 투자자에게 불리하게 설계돼 있어 ESG 정보의 신뢰성과 투자 유입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공시 정보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제3자 검증 로드맵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EU, 일본, 호주 등은 공시 도입과 동시에 또는 1년 내 제한적 검증을 시작하고, 이후 합리적 검증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이미 마련한 상태다.
◆투자와 공급망 재편, ESG 정보에 의해 이뤄져 = 금융위의 ESG 로드맵 초안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기후금융, 스튜어드십 코드, 밸류업 프로그램, K-GX(녹색대전환) 등과도 충돌한다. 이에 포럼은 개선 방안으로 공시 대상을 최소 자산총액 2조원 이상으로 확대하되, 현실적으로는 5조원 이상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스코프3 공시는 1년 유예로 단축하고, 추정치 기반 데이터에 대해서는 ‘세이프 하버(Safe Harbor)’를 적용해 기업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시 방식은 법정 공시를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할 경우 거래소 공시는 1년 이내로 제한하고 빠르게 사업보고서 공시로 전환해야 한다며, 공시 도입 초기부터 제3자 검증 로드맵을 포함해 정보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총장은 “현 로드맵 초안은 투자자와 고객사 모두로부터 외면받는 방식으로 설계됐다”며 “이 같은 방식으로는 자본시장의 코리아 프리미엄은 물론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전환, 에너지 전환 등 각종 전환 정책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과감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