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에 웃는 미국 정유사들
중동 공급 차질에 정제마진 급등 … 휘발유값은 오르고 정유주 강세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유업체들은 디젤과 항공유 가격 급등, 그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북미산 원유를 동시에 활용하면서 이번 중동 전쟁의 대표적인 수혜 업종으로 떠올랐다.
이번 전쟁은 걸프 지역의 원유 생산과 중동 정제시설 가동을 크게 줄이며 역사상 가장 큰 공급 차질 중 하나를 만들었다. 아시아 정유사들은 원유 부족과 높은 조달 비용에 시달리고, 유럽 정유사들도 비싼 원유 가격 때문에 판매 증가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셰일 혁명 이후 자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싼 원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캐나다·멕시코산 원유까지 더해 원가 경쟁력이 높다. 여기에 디젤과 항공유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정유업체들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에너지 컨설팅회사 에너지 애스펙츠의 로버트 캠벨 제품개발 책임자는 “미국 정유사들은 오랫동안 값싼 자국산 원유를 활용하는 전략을 유지해왔다”며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그 강점이 극대화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컨설팅회사 리스타드에너지에 따르면 미국 정유사들의 배럴당 정제마진은 최근 20~25달러까지 올라 3월 초의 평소 수준보다 거의 두 배가 됐다. 업체들은 사실상 최대 가동률에 가깝게 공장을 돌리며 디젤과 항공유를 유럽과 아시아로 수출하고 있다. 일부 물량은 호주까지 향하고 있다.
주가도 빠르게 반응했다. 올해 들어 정제시설을 함께 운영하는 엑슨모빌 주가는 21%, 셰브론은 18% 상승했다. 발레로에너지, HF싱클레어, 마라톤페트롤리엄, 필립스66 등 미국 중심 정유사들의 주가는 평균 27% 올랐다.
셰브론도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입 증가의 수혜를 보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입은 지난 1년 동안 세 배 늘어난 하루 41만2000배럴로, 전체 수입의 약 3.5%를 차지하고 있다.
셰브론의 앤디 월즈 다운스트림·미드스트림·화학 부문 사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휘발유, 디젤, 항공유를 공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2026년이 주는 교훈이 있다면, 세계는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은 정반대다. 미국 운전자들은 주유소에서 급등한 휘발유 가격을 그대로 부담하고 있다. 미국자동차협회(AAA)가 집계한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20일 현재 갤런당 4.042달러다.이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엑슨모빌과 셰브론은 최근 유가 급등으로 파생상품 평가손실 수십억달러를 반영했고, 필립스66도 9억달러 손실을 보고했다. 다만 이는 아직 인도되지 않은 원유 물량에 대한 회계상 손실로, 실제 연료 판매가 이뤄지면 상당 부분 만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엑슨모빌은 이를 “시간 차이에 따른 효과”라고 설명했다.
다만 FT는 이런 ‘횡재’가 오래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질 경우 아시아 수요가 미국산 원유로 더 몰리면서 미국 내 원유 조달 비용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웃고 있는 미국 정유사들도 결국 더 치열한 경쟁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