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2단계는 CPU·메모리 전쟁
GPU 독주 끝났다 … 2030년 CPU 시장 600억달러 추가 수요 전망
로이터가 20일(현지시각) 전한 모건스탠리 보고서의 핵심은 분명하다. AI 혁명이 생성 중심의 1단계를 지나 자율 행동 중심의 2단계로 넘어가면서, 연산 병목이 GPU에서 CPU와 메모리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AI 투자는 대규모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병렬 연산에 강한 GPU에 집중됐지만, 앞으로는 에이전트형 AI 확산으로 여러 작업 단계를 조율하고 관리하는 CPU와 메모리의 중요성도 함께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에이전트형 AI가 있다. 질문에 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목표를 세운 뒤 필요한 작업을 나눠 단계별로 조정·실행하는 시스템이다. 보고서는 단순 연산 속도보다 전체 시스템을 지휘하는 제어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범용 컴퓨팅 집약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AI 경쟁의 기준이 ‘얼마나 빨리 계산하느냐’에서 ‘얼마나 정교하게 조율하느냐’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모건스탠리는 에이전트형 AI가 2030년까지 1000억달러 이상으로 전망되는 데이터센터 CPU 시장에 325억달러~600억달러의 추가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메모리 수요도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봤다. 다단계 작업을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불러오고 저장해야 하는 만큼, 메모리가 보조 부품을 넘어 AI 시스템의 핵심 축으로 올라선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에이전트형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올해 수천억달러 규모의 설비투자를 예고한 상태여서, 관련 반도체 수요는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변화는 투자 지형도 함께 바꾸고 있다. AI 투자 자금이 GPU 단일 축에서 CPU·메모리·파운드리·반도체 장비까지 넓게 퍼질 가능성이 커졌고, 공급이 빠듯한 영역의 기업들은 가격 협상력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모건스탠리가 잠재 수혜 기업으로 엔비디아·AMD·인텔·ARM을 CPU·가속기 부문에서, 마이크론·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메모리 부문에서, TSMC·ASML을 생산·장비 부문에서 각각 지목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넘어 AI 메모리 전반의 주도권 경쟁에서 다시 존재감을 키울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물론 GPU의 시대가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모건스탠리도 GPU 수요는 여전히 강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시장의 관심이 GPU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이 중요하다. AI 반도체 시장의 승부처는 GPU 확보 수량보다, CPU·메모리·가속기·생산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엮어 자율형 AI 시대의 구조를 선점하는 역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