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I 안창현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 “회생제도는 있는데 투자 유인이 없다”
ARS·DIP 법제화 없인 구조조정 작동 한계
“금융·투자 움직일 유인 설계가 핵심 과제”
자금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금융기관과 투자자를 끌어낼 유인 구조가 부족해 구조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안창현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은 “회생제도는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라 경제 구조조정의 핵심 인프라인데, 현재는 제도보다 ‘유인 설계’가 부족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안 회장은 기업회생·구조조정 실무와 제도 개선을 병행해 온 도산 전문 변호사로, 자율구조조정(ARS) 분야를 선도해 왔다. 그는 지난 3월 24일 정기총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으며,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진행됐다.
■회생법원 확대 이후 현장 변화는
광주·대구·대전 등 회생법원이 신설되면서 물적 인프라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접근성도 개선됐고 제도 기반 자체는 확대됐다. 다만 인적 인프라는 아직 미흡하다. 기존 파산부 인력이 유지되면서 전문성이나 운영 방식에서 체감 변화가 크지 않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과거 관행이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 법원 간 편차도 큽니다. 어떤 법원은 10여 건의 서류만 요구하는 반면, 다른 법원은 수십 건에서 많게는 100건 가까운 자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같은 제도인데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신청자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회생제도의 핵심 과제는 무엇인가
제도 자체보다 ‘작동 구조’의 문제다. 회생제도는 법원이 중심이지만 실제로는 금융기관과 투자자가 움직여야 작동한다. 그런데 지금 구조에서는 금융기관이 참여할 이유가 부족하다. 결국 이익이나 명분이 없으면 참여하지 않는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회생절차에 참여해 얻는 것이 명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상여신으로 전환되거나, 충당금 부담이 줄어드는 등 실질적인 이익 구조가 있어야 한다. 그런 설계가 부족한 상태다.
■자율구조조정(ARS) 제도는 어떻게 평가하나
ARS는 회생절차 초기 단계에서 채권자와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방식이다. 회생절차를 대체하는 모델이 아니라 그보다 앞선 단계에서 작동하는 구조조정 방식이다. 이론적으로는 비교적 진보적인 제도이다.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사적 구조조정이 이상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기 때문에 ARS가 그 중간 단계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단순 채무 조정을 넘어서 자산 매각형 ARS 사례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을 보유한 기업이 ARS를 통해 시간을 확보한 뒤 자산을 매각해 채무를 정리하고 회생 신청을 취하하는 방식ㅇ다. 일부는 1~2개월 내에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기도 한다.
■AR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법제화 부족이 가장 크다. 현재 ARS는 실무준칙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이게 법에 있는 제도냐’는 질문이 먼저 나온다.
채무자 회생법에 절차와 효력을 명확히 규정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법적 근거가 생기면 금융기관도 참여할 명분이 생긴다. 지금은 법원이 ‘개시결정 보류’를 통해 사실상 지원하는 형태인데, 이 정도로는 제도 신뢰를 만들기 어렵다.
■긴급운영자금(DIP) 금융과 회생 인수합병(M&A)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핵심은 투자 보호다. 법적으로는 회생회사에 자금을 투입하면 최우선 공익채권으로 보호받도록 돼 있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이해관계 조정 과정에서 이 지위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거나 사실상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보호가 확실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금이 들어오지 않는 거다.
■금융기관 참여가 저조한 이유는
유인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DIP 자금을 넣으면 우선 변제, 지분 참여, 경영 참여 등 명확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구조에서는 그런 인센티브가 제한적이다. 결국 ‘왜 내가 추가로 돈을 넣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답을 못하는 구조다. 금융기관은 기본적으로 수익과 리스크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보상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참여하기 어렵다.
■회생 M&A 시장도 위축됐다는 평가가 있다
맞다. 과거에는 회생기업을 인수해 성장한 사례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투자 실패 사례가 누적되면서 투자자들이 보수적으로 바뀌었다. 또 산업별로 투자 선호가 제한되면서 회생기업과 투자 수요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도 개선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ARS 법제화, DIP 금융 정비, 투자 보호 강화다. 여기에 공익채권 구조 재설계도 포함된다. 투자자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구조를 법적으로 명확히 허용해야 한다.
지금은 제도가 없는 게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구조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자금은 계속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회생제도 인식 문제는
그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회생제도는 실패가 아니라 정상화 과정이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기업과 개인이 이를 숨기거나 마지막 단계에서야 선택한다. 연간 폐업 사업자가 100만건이 넘는 반면 회생 절차를 이용하는 경우는 10만건 수준이다.
상당수가 구조조정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으로서의 포부는
회생제도가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ARS 법제화와 투자 유인 설계 등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 법원·금융권·정책 당국과 협력해 구조조정 생태계를 정상화하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회생제도는 부끄러운 제도가 아니라 법이 허용한 정상적인 경제 회복 수단이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활용이다.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동시에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살고 경제도 건강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