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료인 문신 시술, 무면허 의료행위 아냐”
대법원 전합, 34년 만에 판례 변경
“의학적 지식·경험 꼭 필요치 않아”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이 ‘무면허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내년 10월 문신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적인 미용·서화 문신행위가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기존 대법원 판례를 34년 만에 변경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21일 오후 전원일치 의견으로 의료법 위반 혐의로 각각 기소된 A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또 이날 같은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 역시 무죄 취지로 깨고 파기환송했다.
A씨는 2020년 1월부터 12월경까지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두피문신시술을 해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과 항소심은 A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B씨는 의료인이 아님에도 2019년 5월 레터링(Lettering) 문신시술을 해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은 B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헌법재판소도 여러 차례 의료인만 문신 시술이 가능하게 한 의료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려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9월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허용하는 ‘문신사법’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10월 말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들 사건의 쟁점은 통상적인 미용·서화문신행위가 구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서 금지하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이날 대법원은 문신사법 시행 이전 현행 의료법 기준으로도 문신 시술 행위가 그 자체로 무면허 의료행위로서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의료행위란 진찰·처방 등을 시행해 질병의 예방 치료를 하는 행위, 의료인이 하지 않으면 보건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어 의학적 전문지식에 기초한 시행·관리가 필요한 행위”라며 “문신 시술은 의료행위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문신행위는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갖춘 의료인이 등장하기 전부터 광범위하게 이뤄졌고, 의학·의술과 구분된 독자적 직역으로 발달해왔다”며 “통상적인 서화(레터링)문신·미용문신은 대부분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와 직접적 관련 없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문신시술은 문신 관련 미적 지식과 기능, 경험이 요구되는 영역으로 의료인에 버금가는 의학적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만 성공적인 문신시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바늘 침투 깊이를 자동 조절해주는 등 안전성이 개선된 문신용 기계가 널리 사용되고 있고, 문신용 염료로 인한 보건위생상 위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도 강화됐다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문신사법 등 시행 전이라도 문신시술자의 업무상 과실로 상해를 입히는 경우 등 형법이나 공중위생관리법을 위반한 경우에 따른 형사처벌 가능성이나 국민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규제 도입의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1992년 이후 의료기술이 발전하고 사회일반의 보건위생 지식수준이 개선됐다며 누구든 보건위생상 위해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 신체를 통해 개성을 발현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문신 시술을 받을지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문신은 더 이상 일부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이 자연스레 접할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았고,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다”며 시대 변화를 인정했다.
특히 대법원은 “문신시술을 하려는 사람의 직업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물론 문신시술을 받으려는 사람의 행복추구권, 표현의 자유 등 관련자들의 헌법상 기본권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의료법 조항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짚었다.
일반인에게 문신시술을 위해 의료인 자격을 취득하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비의료인의 문신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고,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직업 선택권을 사실상 봉쇄당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특히 서화문신의 경우 “피시술자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사건들, 간직하고 싶은 추억들,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 인생의 좌우명, 종교적 신념처럼 개인적인 서사를 반영한 자신만의 도안을 선택하기도 한다”며 “자신이 선택한 도안을 매개로 스스로 추구하는 사회적 인격상을 신체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