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건설하도급 ‘갑질’ 대수술…‘1천억대 납품단가 인상’ 이끌어

2026-05-28 11:33:46 게재

19개 대형 건설사, 중동 리스크 여파 건자재 가격 상승분 납품가 반영

“규제만으론 갑질 근절 한계 … 패러다임 바꿔 규제와 자율시정 병행”

법 위반 과징금 고시 개정으로 기업 리스크 가중… “중견사로 확산 방침”

공정위 건설사 상생협약식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왼쪽)이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장과 상생협약식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정부와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과 건자재 가격 인상으로 고통받는 중소 하도급업체들을 위해 대규모 납품단가 조정에 전격 합의했다.

이번 조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엄정한 법 집행 기조 속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자발적으로 상생 모델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재만으론 생태계 못바꿔” =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28일 전문건설회관에서 종합·전문건설업계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건설산업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 협약식’을 개최했다. 협약식에는 주 위원장을 비롯해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 시공능력 평가 상위 19개 종합건설사 대표이사들이 참석했다. 이로써 공정위는 최근 국책과제로 추진해 온 ‘건설업계 상생협약’의 구체적인 이행성과와 향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방안을 확정하게 됐다. 이번 상생협약은 하도급법 집행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적발되어 온 유보금 설정, 부당특약 등 불공정 관행을 사후 제재하는 방식만으로는 중소기업들이 체감하는 피해를 근절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현실 진단에서 출발했다.

이태휘 공정위 하도급조사과장은 “그동안 불공정 관행을 엄정히 제재해 왔지만 고질적인 하도급 갑질 양상이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다”며 “공정한 거래질서 문화의 근본적인 정착을 위해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상생협약을 전격 추진하게 됐다”고 배경을 밝혔다.

특히 최근 공정위가 법 위반 행위에 대한 과징금 부과 고시를 개정하면서 기업들이 부담할 경제적 제재 리스크는 종전보다 훨씬 커진 상황이다. 이 과장은 “과징금 부과 금액 기준이 대폭 상향됨에 따라 기업 입장에서도 사후 적발 시 감당해야 할 부담이 심각해졌다”며 “법 위반을 사전에 예방하고 스스로 바로잡는 자율시정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기업 경영 차원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동전쟁발 건자재가격 폭등 여파 = 현재 건설업계는 중동전쟁 여파에 따른 유가급등으로 시멘트 등 핵심 건자재 가격이 줄줄이 올라 하도급업체들의 경영난이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대기업이 분담하는 ‘하도급 대금 연동제’의 확산과 신속한 납품단가 조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였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이번 협약에 참여한 국내 19개 대형 건설사들은 상생협약의 취지에 공감하며 총 1343억원 규모의 납품단가 인상 조치를 단행하거나 이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공정위 집계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중동전쟁 발발 이후 현재까지 세부조정을 통해 이미 340억원 규모의 단가 인상을 완료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고 정부와 대형건설사들의 ‘고통분담’ 공감대가 모아지면서 향후 1000억원대의 추가 인상안을 확정해 순차적으로 집행할 계획이다. 다만 공정위는 건설사들이 개별 기업의 상세 재무정보 유출을 우려하고 있어, 건설사별 인상 금액은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장은 “건설사들이 상생협약 내용의 최종 결정 과정에서 매우 전향적이고 협조적인 태도로 적극 동참했다”며 “최근 삼성전자의 성과급 배분 문제 등으로 전반적인 산업계의 노사·상생 거버넌스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건설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실천한 것은 매우 성숙하고 의미 있는 모범 사례”라고 평가했다.

◆민관협의체 가동하고 중견사로 확산 = 정부는 이번 상생협약이 일회성 선언이나 전시행정에 그치지 않도록 강력한 사후 실효성 확보 장치를 마련했다. 공정위와 19개 건설사는 향후 정기적으로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구체적인 모범사례를 산업 전반에 공유하기 위해 상설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공정위는 대형 건설사들이 구축한 이번 상생 모델을 토대로 시장 파급력을 한층 높이기 위해 공급망 하부에 위치한 중견 건설사들과도 순차적으로 상생협약 체결을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대외적 경제 충격 속에서 상생협력 문화를 민간시장 주도로 확산시키려는 공정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건설업계의 해묵은 갑을관계를 청산하고 체질개선을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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