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조선업 실태

본국에선 월 270만원 계약하고 한국 와선 최저임금

2023-10-20 11:06:11 게재

송출수수료 800만~1200만원 뜯기고 저임금·장시간노동에 산재위험까지 … 64% "기회가 된다면 이직하고 싶다"

세계 1위로 급부상했던 한국의 조선업은 2010년대 중반 수주 감소와 고유가로 위기를 맞았다. 조선사들은 대량 구조조정을 감행했고 20만명 노동자 중 절반이상이 조선소를 떠나야 했다. 최근 수주가 회복세를 보이며 향후 5년 동안 3만여명의 신규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낮은 임금, 고위험 노동 탓에 조선소를 떠난 국내 숙련 노동자들 돌아오지 않고 신규 노동자들도 외면하고 있다.
조선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와 조선사들은 국내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과 임금인상을 하는 대신 저임금과 취약한 지위의 이주노동자를 대거 활용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송출입 과정에서 높은 수수료를 납부하고 있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산재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사업장 변경제한에 더해 지역제한과 업종제한까지 이중 삼중의 굴레 속에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정의당은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회'를 열었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위험한 작업환경은 이주노동자들도 조선소를 떠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참석자들은 경고했다.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 파업 1년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7월 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을 방문해 조선소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면담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1년이 지났지만 불황기에 내려간 임금은 이전 수준으로 회복이 더디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조선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이주노동자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에이전트(인력송출업체)에 스리랑카 돈으로 300만루피(1250만원) 줬어요. 그거를 어디에 쓰는지는 설명 없어요. 돈 없으니까 집을 담보해서 은행 대출받았어요. 다른 친구들도 집도 팔고 차도 팔고 오토바이 팔고 한국에 왔어요."

#. "한국 오기 전 월급 270만원으로 계약했지만 한국에서 최저시급(9620원)으로 다시 계약서를 썼어요. '이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미얀마 돌아가야 한다' 그런 얘기했어요. 어쩔 수 없이 서명했어요."

#. "'한국에 가서 불법체류 안한다'는 서류에 서명했어요. 계약기간대로 일하지 않고 이탈하면 한국 돈으로 2000만원을 줘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또한 가족이랑 공무원도 사인(연대보증)했어요."

법무부가 지난해 4월부터 조선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일반기능인력(E-7-3) 비자로 외국인력의 입국을 확대했다. 이렇게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800만~1200만원의 송출수수료를 내고 한국에 왔지만 당초 본국에서 쓴 계약서와 달리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 계약을 강요받고 장시간 노동과 산재 위협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소 이주노동자 10명 중 6명 이상은 저임금과 위험한 작업환경 때문에 조선소를 떠나고 싶어 한다고 조사됐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정의당은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회'를 열었다.

금속노조는 지난 5~7월 HD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한화오션에서 일하는 베트남·네팔·우즈베키스탄 등 10개국 이주노동자 4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체류자격별로 보면 비전문취업(E-9) 비자가 62.8%, E-7-3 비자가 25.6%로 다수였다. 2022년 이전 입국자들은 E-9 비자가 다수였지만 2022년 이후부터는 E-7-3 체류자격의 증가폭이 컸다. E-7-3 비자가 2022년 입국자 중 21.6%, 올해는 48.0%였다.

◆일반기능인력(E-7-3) 비자 3년새 21배 급증 = 2016년 조선업은 수주 절벽과 고유가로 위기를 맞았다. 조선사들은 대량 구조조정을 단행해 20만명에 달하던 노동자 중 절반 이상이 일터를 떠났다. 2021년부터 조선업 수주가 회복세를 보이며 향후 5년 동안 3만여명의 신규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낮은 임금과 고위험 노동 탓에 조선소를 떠난 국내 숙련 노동자들은 돌아오지 않고 신규 노동자들도 외면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조선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조선업 전용 고용허가제(E-9 비자) 쿼터를 신설했다. 법무부까지 나서 지난해 4월부터 E-7-3 비자로 조선소 인력공급을 확대했다.

조선업계의 이주노동자 수(E-7-3, E-9, H-2 비자)는 2021년 3570명에서 올해 8월 기준 1만3258명으로 3년 만에 4배 늘었다. 특히 법무부가 관할하는 E-7-3 비자 노동자는 같은 기간 264명에서 5470명으로 21배 가까이 늘었다.

E-7-3 비자는 외국인고용법에 따른 고용허가제 적용을 받지 않아 도입 규모와 시기 등의 조절이 쉽기 때문이다.

이들의 근로조건과 노동환경은 어떨까.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63.7%는 "기회가 된다면 조선소가 아닌 사업장으로 이직하고 싶다"고 했다.

이직하고 싶다고 응답한 이들을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복수응답) '노동강도에 비해 임금이 낮아서'가 67.2%로 가장 많았다. 이어 같은 일을 해도 한국인보다 임금이 낮아서(34.9%), 작업장 환경이 너무 위험해서(23.9%), 오래 일해도 임금이 오르지 않아서(21.8%), 노동강도가 너무 강해서(19.3%), 폭언·괴롭힘 비인격적 대우 때문에(5.0%) 등이 뒤를 이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정의당은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회'를 열었다. 사진 금속노조 제공


◆법무부 임금요건 규정 어기고 최저임금 계약 =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7-3 비자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법무부 규정상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 한국은행 산출)의 80%(지난해 기준 281만3530원) 이상을 받아야 한다. 다만 중소·벤처·비수도권 중견기업은 GNI의 70%(246만1840원) 이상을 지급하면 된다. '무분별한 저임금 이주노동자 고용을 방지해 내국인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조치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정이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응답자 85.9%가 임금을 시급제로 받았는데 평균시급은 9680원이었다. 올해 최저임금인 9260원을 받는 이들이 77.1%로 가장 많았다. '9630원~1만원'을 받는 이들은 20.3%였고 '1만원~1만1200원'을 받는 경우는 2.2%에 그쳤다. 심지어 지난 1년간 임금체불 경험이 있다는 이들은 2.9%였다.

이주노동자들은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며 휴일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응답자의 절반(45.2%)이 하루 8시간 이상 일했다. 이어 '8시간30분~9시간'(34.1%), 9시간30분~12시간(11.1%) 등이었다.

일주일 평균 잔업은 '4회 이상'이 49.1%로 가장 많았다. 이어 2회 이상~4회 미만(35.6%), 2회 미만(15.4%)로 뒤를 이었다. 한달 동안 '3일 이하'를 쉬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31.3%나 됐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살고 있다는 이들이 90.5%이고 이 중 숙식비를 월급에서 공제하는 경우는 61.8%였다. 공제된 숙식비는 평균 6만2206원으로 최저 1만3000원에서 최고 50만원까지 편차가 매우 컸다.

금속노조는 "숙식비를 높게 책정해 기존 계약시 책정된 임금을 낮추는 사업주의 꼼수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설명했다.

응답자 4명 중 1명은 작업 도중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지난 1년간 조선소에서 작업 중 부상을 당한 이주노동자는 26.7%, 작업으로 질병을 얻은 비율은 24.7%였다. 작업장에서 폭행·폭언을 경험한 이들은 17.3%였다.

◆고용부 근로감독 강화, 법무부 고용금지 제재해야 = 금속노조는 이주노동자 18명과는 심층면접도 진행했다. 심층면접에 참여한 E-7-3 비자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조선소 취업을 위해 적게는 800만원에서 많게는 1200만원까지 본국 송출업체에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울산의 한 조선소에선 미얀마 이주노동자 30여명은 취업사기를 당했다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미얀마 노동자 A씨는 비자(E-7-3)를 발급받고 올해 초 입국해 울산의 한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A씨는 지난해 입국전 미얀마에서 체결한 근로계약서에는 기본급 191만4440원(시급 9160원×209시간)과 고정수당 78만5560원을 더해 270만원을 받기로 했다. 법무부의 E-7-3 비자 임금요건(전년도 GNI 80% 이상)에 맞춘 것이다.

하지만 올해 한국에 와서는 하청업체로부터 불리한 이면계약에 서명하도록 강요받았다. 올해 1월부터 중소·벤처·비수도권 중견기업의 경우 임금요건(GNI 70%) 이상으로 완화됐고 여기에 하청업체의 '꼼수'가 더해졌다.

기본급이 올해 최저임금을 적용해 201만580원(시급 9620원)과 고정수당 30만원으로 실제 231만580원을 받는 계약이었다. 그런데 '월 평균임금'은 231만580원이 아니라 265만69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금액은 연장근무를 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연장근무수당은 통상임금이 아닌데도 이를 포함시켜 E-7-3 비자 임금요건 충족을 위한 꼼수였다.

또한 식비 20만원, 숙박비 10만원을 이주노동자가 부담하는 계약이었다. 지급하기로 한 고정수당 30만원을 고스란히 숙식비 30만원으로 되가져가는 식이다.

이번 실태조사에 참여한 김그루 연구위원(이주노동119)은 "E-7-3 이주노동자들은 입국 전 비교적 높은 수준의 임금 계약을 체결했으나 입국 후 최저임금 계약서에 강제로 서명하고 있다"며 "고용부는 입국 후 편법적인 불이익 계약을 맺은 업체들을 적발해 시정조치를 하고, 법무부는 해당 업체에 대해 E-7-3 신규 이주노동자 고용금지 등 제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종걸 금속노조 미조직전략조직부장은 "조선업 인력수급대책은 숙련된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임금과 노동조건을 하락시켜 기존 인력의 이탈을 불러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선업 인력부족의 근본적인 대책은 다단계하도급 구조를 폐지하고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이고 안전한 노동조건과 정당한 임금이 보장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권리는 국적과 고용형태 등 그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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