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사고, 소송·고소 아닌 '조정'으로 해결하자

2016-02-22 11:00:49 게재

의료사고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려면 고액의 소송비용과 장기간의 소송 스트레스를 감수하고 의료과실까지 입증해야 한다. 자칫하면 수년간의 의료소송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의료과실을 입증 못해 패소까지 하면 본인 소송비용 이외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수천만 원을 낭비하는 등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의료사고 피해자 중에는 고액의 소송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의료사고 개연성이 있음에도 민사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경우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제도 문을 두드리지만, 의료기관이 동의하지 않으면 각하된다.

이에 분노한 피해자들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형사고소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병원 앞에서 집회나 시위를 하다가 업무방해죄와 명예훼손죄로 형사고소 되어 전과자가 되기도 한다. 의료인이 형사고소를 당하면 실제 형사처벌을 받기도 하고, 검찰에서 불기소처분을 받거나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도 수사기관 조사와 법원 재판으로 큰 고통을 겪는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 2011년 4월 8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개원하였다. 문제는 우리나라 국민 2명 중 1명은 의료사고 피해구제제도인 의료분쟁조정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는 것이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개원한 이래 총 5,487건의 조정신청 중 43.2%에 해당하는 2,342건만이 개시되었고, 3077건은 상대방의 부동의 또는 14일간 무응답으로 각하되었다. 즉, 조정신청자의 56.8%가 의료분쟁조정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의료분쟁 조정절차가 상대방의 부동의 또는 14일간 무응답으로 각하되는 의료분쟁조정법상의 독소조항(제27조제8항)이 없고 자동개시제도가 도입되어 있었다면 각하된 3077건의 조정신청 건 중 상당수는 이미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2014년 4월 1일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일명, 예강이법)과 2015년 11월 4일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일명, 신해철법)이 각각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다행히 2016년 2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사망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상해' 의료사고 발생 시 상대방의 동여 여부와 상관없이 조정절차가 자동개시 되도록 의결했다.

그동안 소비자단체들은 "피해자 구제제도 중에서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무응답 한다고 피해구제 신청을 각하하는 제도는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유일하므로 언론중재위원회, 환경분쟁조정위원회, 한국소비자원 등 타 분쟁조정제도와 동일하게 조정신청이 있으면 자동으로 조정절차가 개시되도록 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에 반해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도입하면 조정신청이 남용될 수 있어 의료기관에 과도한 행정적 부담을 주고, 의사가 의료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불가피하게 방어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런 의료계와 소비자단체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로 인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국회에 발의 된 지 거의 2년 동안 한 번도 심의되지 않았다. 결국 19대 국회 폐회 두 달을 남겨두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어떠한 조건도 붙이지 않은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 도입이라는 최선책이 아닌 '사망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중상해'로 그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차선책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중상해' 개념은 형법, 교통사고처리특례법 등에 규정된 '법률적 용어'이기 때문에 판단이 가능하다. 중상해의 구체적 범위에 대해서는 의료계와 시민·소비자·환자단체가 함께 사회적 논의를 거쳐 결정하면 된다. '중상해'의 판단기준이 확정되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가칭) '중상해판정위원회'를 신설해 조정절차 자동개시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의료분쟁조정법은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할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그렇다면 의료계와 소비자단체가 조금씩만 양보해 '사망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중상해' 의료사고만이라도 조정절차가 자동개시 되도록 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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