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노믹스, 전후 자본주의 질서의 파괴적 단절"

2017-01-31 11:23:54 게재

전 세계 석학들이 진단하는 트럼프 행정부 경제정책

도널드 트럼프의 시대가 도래했다.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트럼프는 1945년 이후 성립된 자본주의 질서가 어떤 형태로든 전환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시와 멕시코 북부도시 시우다드 화레스를 사이에 두고 새로 지어진 국경선에서 멕시코 아이들이 미국 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게이브칼 드래고노믹스(Gavekal Dragonomics)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공동 의장이자 '자본주의 4.0'의 저자, 타임스·뉴욕타임스·파이낸셜타임스 경제평론가인 아나톨 칼레츠키는 "지배적 경제질서 간 전환이 일어날 때엔 일정 기간의 공백기가 있기 마련"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4년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아나톨 칼레츠키

그에 따르면 글로벌 자본주의에 시스템적 위기가 발생했을 땐 약간의 시차를 두고 중대한 정치경제적 전환이 있었다. 1840년 혁명의 시대엔 자유주의적 제국주의가 뒤따랐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엔 케인스주의가 뒤따랐다. 1970년대 폭발적 인플레이션 이후엔 대처-레이거니즘이라는 시장 우선주의 사상이 뒤따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0년의 시차를 두고 트럼프노믹스가 등장했다. 칼레츠키는 "트럼프노믹스가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의 등장을 알리는 중대 사건이 될 수 있을까" 반문한 뒤 "해답은 찾으려면 △트럼프노믹스는 효과를 거둘 것인가 △트럼프노믹스는 정치적으로 지속가능한가 △트럼프노믹스가 전 세계 자본주의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로 나눠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최근 미국 신경제사고연구소(INET) 기고문을 통해 전 세계 다양한 석학들의 의견을 기반으로 앞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찾기에 나섰다.

부익부빈익빈의 낙수효과 부활하나

조셉 스티글리츠

'트럼프노믹스'의 효과와 관련한 첫 번째 질문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희망적 측면을 찾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매우 절망적이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미국과 전 세계에 희망의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며 "대규모 감세와 정부 적자 해소를 통해 인프라 투자비와 방위비를 대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은 기만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스티글리츠가 보기에 트럼프는 레이건 시절 역진세적 부작용이 입증된 낙수효과를 재현하려 한다. 하지만 당시와 달리 2가지 치명적 요소를 더 갖고 있다. 바로 중국과의 무역전쟁, 그리고 수백만 미국인의 건강보험 상실이다.

그는 트럼프노믹스로 인한 정치적 결과가 재앙적일 것이라고 내다본다. 낙수효과 담론은 트럼프를 찍었던 미 중부지역 러스트벨트의 성난 낙오자들을 달래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자신들을 배반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이들은 희생약을 찾아 더욱 공격적이고 파괴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게 스티글리츠 교수의 진단이다.

사이먼 존슨

MIT 교수인 사이먼 존슨도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트럼프노믹스의 정책 우선순위는 그가 선택한 내각에서 잘 드러난다"며 "막대한 경제력을 가진 소수의 특권계층을 노골적으로 가려 뽑았다"고 지적한다. 또 세제정책에서도 고소득 계층의 이익을 위해 소득세와 법인세를 크게 낮추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존슨은 "트럼프는 보호무역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그릇된 믿음을 가진 경제인들의 모임을 이끄는 한편 세금감면에 적극적인 시장우선주의자들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보호무역주의자와 시장우선주의자라는 이질적 집단을 통합시키기 위해 해괴한(?) 논리가 동원되고 있다고 본다. 즉 수입관세를 대폭 늘려 법인세 삭감으로 인한 세수결손에 충당하는 식으로 두 집단의 통합을 꾀하고 있다는 것.

문제는 관세를 높이면 판매세도 오른다는 점이다. 그 결과 소수 특권층은 낮은 법인세라는 혜택을 받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물건을 살 때 보다 높은 세금을 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존슨은 "보호무역주의로 양질의 일자리가 지금보다 더 많이 줄어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마틴 펠드스타인

존슨과 달리 하버드대 교수 마틴 펠드스타인은 한계세율(초과수익에 대해 세금으로 지불해야 할 비율) 감면에 찬성한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낸 펠드스타인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최고소득 계층에 대해 과한 세금부담을 지우는 정책을 지속했다"고 비판하며 세수중립성 차원에서 최고소득층에 대한 세부담을 줄이고 세원을 넓히려는 트럼프의 세제정책을 옹호한다.

하지만 그 역시 고소득 일자리를 중산층에게 돌려주고 경제성장률을 크게 높이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에는 회의적이다. 펠드스타인은 "지난해 10월 실업률이 4.9%에 이르면서 미국 경제가 실질적으로 완전고용에 가까워졌다"며 "노동시장이 타이트해지면서 지난해 소비자물가가 2.2% 상승해 전년 1.9%를 능가한 반면 제조업 노동자 임금은 2.4%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즉 실질임금 상승률과 인플레이션 상승률을 고려하면 트럼프가 예고한 총수요 증가정책을 쓸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더 나빠질 수 없다면 희망은 있다'

대니 로드릭

펠드스타인의 회의적 입장이 보여주듯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가 이데올로기에 따라 정확히 구분되는 건 아니다. 하버드대 교수로 개발주의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대니 로드릭은 실제 무역과는 관계 없는 조항들로 가득한 '자유무역협정'에 트럼프가 극구 반대하는 것을 옹호한다. 그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빗 리카로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조항을 읽어본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라고 비판한다. TPP를 비롯한 최근의 무역협정이 특정 산업과 기득권에 과도한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로드릭은 "최근의 무역협정은 공익을 추구하는 각국의 정책 목표를 희생해 금융기관과 다국적 기업들에게 특혜를 안겨주기 위해 고안됐다"며 △지적재산권 △자본흐름보호 △투자보호 조항을 그 예로 지적한다.

물론 로드릭 역시 트럼프의 선동적 정치와 비합리적 주장들을 비판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되는 글로벌화의 흐름을 트럼프가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는 "경제학자들은 △노동시장의 기능 약화 △신용시장의 결점 △지적, 환경적 외부효과 △독점 등 시장의 실패를 무역으로부터 얻는 이익으로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며 "따라서 그들은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키고 정당한 분배를 왜곡시키며, 한 국가 내의 사회적 계약을 약화시키는 글로벌화의 단점을 지속적으로 축소시켜 왔다"고 비판한다. 그같은 글로벌화의 단점이 압축적으로 집약된 곳이 현재의 미국 사회라는 것이다.

로버트 스키델스키

케인스주의 경제사학자인 로버트 스키델스키 역시 트럼프 정책, 나아가 그의 경제철학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낸다. 그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고임금에 풍부한 일자리를 자랑했던 미국의 전통적 제조업경제가 글로벌화에 박살났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며 "트럼프의 고립주의는, 미국이 이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수많은 국제적 약속으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다는 포퓰리즘적 표현방식"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트럼프가 약속한 △8000억~1조달러의 인프라 투자 △과감한 법인세 삭감 △복지프로그램 유지 등은 케인스 재정정책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것"이라며 "적자와 부채를 줄여야 하고 유일한 수요관리 도구는 양적완화 통화정책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편견에 트럼프가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키델스키는 "예전 같으면 터부시됐을 그같은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이면서 트럼프노믹스는 붕괴의 전조가 아니라, 오히려 위기에 빠진 신자유주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는 "만약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자들은 그의 정책을 절망 속에서 외면할 게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 잠재성을 발견하고 적극 개입해야 한다"며 "트럼프의 제안을 무식한 헛소리로 치부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따져물어 더욱 세련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케네스 로고프

비슷한 맥락에서 하버드대 교수 케네스 로고프는 트럼프의 정치가 싫다고 그의 경제정책까지 깡그리 무시하는 측에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다. 트럼프의 재정 부양책과 탈규제 정책은 고전적 케인스주의 측면에서 수요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로고프는 "탈규제 정책이 일반 국민의 복지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그의 세금 감면책이 부자들에게 훨씬 큰 혜택을 주겠지만 그같은 정책이 미국 경제를 최소 당분간만이라도 견인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경제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일에 좋은 놈 나쁜 놈을 따질 필요는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한 것만 따지면, 전범국가 중 한 곳인 독일이 미국 못지않은 성공을 거뒀다"고 설명했다.

칼레츠키 역시 "연준의 금리인상과 달러 강세, 역진세 성격의 분배효과 등 부정적 측면이 트럼프노믹스 덕분에 부분적으로나마 상쇄될 수 있을 것"이라며 "강력한 케인스적 부양책을 시행하고 많은 가계를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몰아낸 과도한 금융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미국 기업이 해외에 숨겨둔 막대한 이익을 본국으로 송환할 수 있도록 세금을 낮춘다면 미 경제에 상당히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라고 분석한다.

▶내일자(2월 1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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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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