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 이제 안되는 건 안되는 '보통기업' 됐다
▶"'혁신의 아이콘' GE에 무슨 일 생겼기에… 에서" 이어짐
'안되면 되게 하라'가 아니라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2008년 1분기 GE 이멜트 회장이 투자자를 상대로 "모든 상황이 좋다"고 한 바로 그때, GE 수익은 시장의 예상보다 7억달러 모자랐다. 당시 모간스탠리 애널리스트였던 스캇 데이비스는 투자자메모를 통해 "GE 내에 무언가 고장난 것 같다"고 지적했다. GE는 자사의 이익이 오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단기부채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 금융위기로 시장이 얼어붙자 GE가 실적을 부양하기 위해 사용하던 마법의 도구가 사라졌다. 몇개월 뒤 GE가 빚을 갚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퍼졌고, 이어 아예 파산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2008년 10월 GE는 긴급주식처분을 통해 150억달러를 모았다. 그중 30억달러는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를 통해서였다. 이어 미 연방정부가 1390억달러에 이르는 GE의 채무에 보증을 서면서 가까스로 2008년을 넘길 수 있었다.
이후 고통의 10년 동안 거대했던 GE캐피털 몸집은 왜소해졌다. 하지만 GE 이멜트 회장은 다른 부문에서 인수합병을 강행했다. 프랑스 알스톰사의 전력부문을 100억달러에 사들였다. 또 'GE디지털'에 돈을 쏟아부었다. 정보의 홍수 시대를 대처하기 위해 GE만의 소프트웨어 언어를 만들어 판매하겠다는 야심찬 목표의 일환이었다. 이멜트는 GE를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회사'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경쟁기업들도 GE의 소프트웨어를 쓸 수밖에 없도록 경쟁력을 갖추겠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GE는 그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위기에 선제 대응할 수 없었다. 알스톰 인수로 회사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천연가스 발전소에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 부문 시장이 축소되고 있었다. 천연가스의 경쟁상대인 신재생에너지 생산비용이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또 원유값도 떨어져 'GE파워' 최대고객인 산유국들의 천연가스 발전 수요가 줄었다. 수익은 급감했고 팔지 못한 터빈 재고는 산더미같았다. 현금 30억달러가 사라졌다. 지난해 8월 GE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이멜트 회장은 결국 CEO에서 물러났다. 그는 연말까지 이사회 의장직은 유지하겠다고 말했지만, 10월 그마저도 사임했다.
가스터빈 시장의 침체를 예상 못한 건 GE뿐만이 아니었다. 독일 지멘스AG나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등 경쟁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최고 수준의 글로벌 재벌기업이라면 한 사업분야에 생긴 어려움쯤은 툭툭 털어버려야 정상이다. 하지만 2008년 GE캐피털 때문에 그룹 전체가 간난신고를 겪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GE파워 때문에 또 다시 그룹 전체가 휘청거렸다. 투자자와 전문가들은 그동안 "모든 일이 순조롭다"는 GE 경영진의 말을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 됐다. GE가 배당금을 줄이겠다고 선언하자 시장은 크게 당황했다. 1899년부터 배당금을 지급해온 GE가 배당금 규모를 줄인 건 대공황 시절인 1938년이 마지막이었다. 게다가 GE는 지난 3년간 자사주매입에만 490억달러를 쓴 기업이었다. 그같은 규모의 자사주매입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현금이 많을 때 실시하는 게 보통이다. GE처럼 악화일로에 놓인 기업이 외양 꾸미기의 일환으로 할 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배당금 삭감 결정으로 GE의 연금보험 부족액이 310억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부각됐다. 게다가 GE는 지난달 중순 "향후 7년간 보험 부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에 대비해 150억달러의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고 밝혀 시장에 또 다른 충격을 안겼다. 투자자문사 윌리엄 블레어&Co의 애널리스트 니콜라스 헤이만은 "GE가 다음엔 또 어떤 악재를 터뜨릴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GE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전 세계 주요 선진국의 경제상황이 여전히 왕성하지만 GE만 홀로 흔들리고 있다. 헤이만은 "등 뒤에서 순풍이 불고 있지만 GE의 돛은 찢어져버렸다"고 말했다.
이멜트의 뒤를 이은 존 플래너리 회장은 별명이 '수리공'(fix-it man)이다. GE캐피털에서 경력을 쌓다 헬스케어 부문으로 옮겨 자신의 주가를 높인 인물이다. 그는 GE파워의 경영진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했다. GE디지털의 경우 몸집을 과감히 줄여 기존 고객에게 몇가지 어플리케이션을 판매하는 데 집중시켰다. 그는 향후 대규모 인수합병은 없다고 선언했다. 알스톰 인수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고 인정했다. 비정상적 회계관행도 바꾸고 있다. 이제 GE는 사업 분야를 줄이고 살아남은 기업도 업무범위를 좁힐 계획이다. 플래너리 회장은 지난해 11월 "복잡성이 우리를 망친다"고 강조했다. 그는 '더 작고 더 단순한 GE'를 약속했다.
블룸버그는 "플래너리 회장은 경영의 마법사가 필요하지 않은 GE를 약속하고 있다"며 "경영 마법사란 실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이어 "그가 자신의 바람대로 GE를 바꾼다면, GE는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기업으로 변할 것"이라며 "혁신 사례나 경영기법을 전파하는 '선구자'가 아니라, 질 좋은 제트엔진이나 가스 터빈, 의료기기 등을 만들어 파는 '보통기업'이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