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미세먼지에 갇힌 한국 도시

미세먼지와 전쟁 선포한 박원순

2019-06-07 11:00:27 게재

'런던 쇼크' 발판, 미세먼지 '초강수' 둔다 … 런던에 자극 "대책 강도 높일 것"

대기질 국제포럼도 한 몫, 시민참여 독려할 명분으로 … 2부제 찬반은 엇갈려

박원순 서울시장이 영국 런던 순방 이후 미세먼지와 전쟁을 본격화할 태세다. 런던시가 추진 중인 강력한 노후차 단속, 런던의 초강력 미세먼지 정책을 주도한 전문가 만남 등을 통해 '런던 구상'을 가다듬고 대책의 고삐를 조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차량 2부제 등 강력한 미세먼지 저감조치는 벌써부터 만만치 않은 반발이 감지된다. 박 시장이 노후차 운행제한을 골자로 한 녹색교통진흥지역, 강제 차량 2부제 등 강력한 저감대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미세먼지 야전 사령관'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달 5일 런던을 방문한 박원순 시장이 사디크 칸 런던시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서울시 제공


박 시장은 지난달 22~23일 서울에서 열린 2019 대기질 개선 국제포럼에서 '미세먼지 시즌제' 추진 의지를 다시금 확인했다. 그는 개회식 인사말을 통해 "서울시는 미세먼지가 심한 12월부터 3월에 걸쳐 강화된 내용으로 미세먼지 고농도 시즌제를 준비 중"이라며 "국가와 도시경계를 넘어 미세먼지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도 높은 규제 탓에 논란이 예상되는 미세먼지 시즌제 추진 의지를 거듭 공표한 것이다. 시즌제는 미세먼지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다발 기간을 정해 비상저감조치를 상시 실시하는 것으로 현재까지 제시된 대시민 저감대책 중 가장 강력한 제도로 꼽힌다.

런던 순방은 미세먼지 야전 사령관을 자처한 박 시장에게 강한 자극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런던의 '초저배출구역' 운영은 서울시가 추진중인 녹색교통진흥지역 보다 한층 강화된 버전으로 박 시장의 '강경책'을 부추겼다.

런던의 초저배출구역은 세인트폴대성당·타워브릿지 등이 있는 런던 중심부 21㎢ 구간이다. 서울로 치면 사대문 안 중에서 광화문 주변 정도에 해당한다. 이 구역 안에 유럽연합 유해가스 배출 기준인 '유로4(경유차는 유로6)에 미달하는 자동차가 진입하면 12.5파운드(약 1만9000원)의 공해세를 낸다. 위반 시 최대 1000파운드(약 152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도심공해세는 런던이 세계 대도시 중 처음으로 도입한 제도다. 2016년 취임 후 대기오염과 전쟁을 선언한 사디크 칸 런던시장의 대표적 미세먼지 정책이다. 런던은 건물별로 난방 에너지 배출량 측정도 가능하다. 박 시장은 당시 칸 시장과 만나 "런던의 도심 차량제한 정책에 감동받았다"면서 "런던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초보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런던의 대기질 관리 정책을 집중적으로 따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런던 미세먼지 정책을 주도한 프랭크 켈리 킹스칼리지 런던 환경보건학 교수와 만남은 박 시장의 강경책에 보다 큰 명분을 제공했다. 프랭크 교수는 "서울 런던같은 대도시는 교통수단이 대기질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런던도 2016년 연구 결과 미세먼지 발생 원인의 64.9%가 택시, 화물차 등 교통수단에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서울도 런던처럼 강력한 교통수요 정책을 펴야 하며 혼잡세와 도로세를 병행해 부과하는 싱가포르 교통 정책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원순 시장이 이른바 런던 쇼크를 통해 보다 강력한 미세먼지 저감대책 추진을 준비 중이지만 벽도 만만치 않다. 특히 차량운행제한에 대한 반발이 예상된다. 서울시가 지난 4월부터 한달 간 실시한 차량 강제 2부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시를 고민에 빠뜨렸다. 구체적인 분석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주관식 문항에서 반대 의견이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서울시는 여론조사 결과에 어느 정도 자신을 갖고 있었다. 최근 실시한 다른 조사들에서 운행제한에 동의하는 여론이 70% 이상으로 나타난 경우가 다수였기 때문이다. 특히 승용차 없이 출퇴근이 불편한 계층, 생계형 화물차 운전자 등 서민층 반발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문에 시는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 공감대 확산에 주력 중이다. 지난달 28일 시청에서 열린 녹색교통지역 운행제한 관련 공청회에서도 물류관계자와 거주자 등에 대한 소통과 의견청취 필요성 등이 제기된 바 있다.

최동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규제에 대한 공감대가 커진 것은 사실이나 생계형 운전자 등을 중심으로한 반발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며 "규제에 대한 공감 확산 노력은 지속하되 정부와 공공이 자신들 영역에서 앞장서지 않으면 시민 설득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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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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