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다

2020-12-09 11:06:30 게재
"전기차 인식 전환이 석유수요에 큰 영향 미쳐" 에서 이어집니다

투자자들에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석유산업은 그 빛을 잃었다는 것. 엑슨모빌은 2013년까지 세계 가장 가치 높은 기업이었다. 하지만 올해 다우존스산업지수에서 퇴출됐다. 지금은 신재생에너지기업 '넥스테라에너지'의 시가총액과 경합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소재 기업으로 풍력과 태양광 발전사업을 하는 곳이다. 지난 10월 넥스테라는 잠깐이나마 엑슨모빌 시총을 제친 바 있다.

테슬라 주식은 올해 기록을 세운 해였다. 2~6위 5개 자동차업체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 더 많았다. 증시는 성장주에 보상한다. 온라인 소매사업이 참신했을 때 아마존의 주가는 고공행진했고, 케이블TV가 장악하던 때 넷플릭스의 주가는 치솟았다. 석유수요의 미래와 관련해 시장은 분명한 답을 주고 있다.

'피크오일'이라는 용어가 애초부터 수요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세계 원유공급이 언젠가 끝이 날 것이라는 전제를 갖고 시작됐다. 석유업체들이 아무리 열심히 파내도 지구상에 더 이상 퍼올릴 석유를 없을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운수송의 위기가 뒤따를 것이었다.


피크오일 가설은 과거 수십년간 경제적 사고를 지배했다. 하지만 셰일석유와 심해시추 기법, 오일샌드 등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한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석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급이 아닌, 수요로 인한 피크오일이 있을 것이라는 개념이 확고히 자리잡았다. 산유국은 이를 두려워하고, 환경보호론자들은 이를 찬양한다.

피크오일, 공급 아닌 수요 때문

피크오일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시장의 전환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새로운 석유 공급에 투자할 경우 리스크가 커진다. 때문에 투자자들이 발을 빼고 있다. 산유국이나 메이저 석유기업들의 정치적 파워도 기울고 있다.

2014~2016년 국제유가가 급락해 충격을 줬다. 그에 앞선 수년 동안 유가는 배럴당 110달러 선이었다. 당시 전문가 대부분의 전망은 수십년 동안 비슷한 가격대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공급과잉 상황이 닥치면서 유가는 배럴당 40달러 이하로 고꾸라졌다. 시장조사기업 이밸류에이트 에너지 자료에 따르면 당시 석유자산 가치는 5000억달러 이상 감소했다. 유가 전망은 회복되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코로나19 팬데믹에 석유수요가 급감하면서 석유업계의 자산가치는 또 다시 1700억달러 하락했다. 이는 미국 석유기업들의 경우 확인매장량의 18%에 해당하는 가치다. 장부상 사라지는 돈들이다. 기업들도 더 이상 자신의 석유자산 가치를 믿지 않는다.


2020년 평가절하액을 넘어선 건 2015년 하반기가 유일하다. 국제유가 붕괴 충격 때문이었다. 하지만 향후 더 심각한 상황이 올 것이다. 엑슨모빌은 이달초 자산가치를 200억달러 삭감했다.

블룸버그NEF 석유애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도허티는 "석유회사들이 팬데믹의 단기 충격에만 집중한다면, 대응법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며 "하지만 기업들의 잇따른 평가절하는 장기 수요, 즉 피크오일에 대처할 자신감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나온 대부분 석유수요 전망은 '피크오일에 도달한다 해도 예측 가능한 미래에 석유가 여전히 에너지 시장에서 결정적 역할을 지속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 부문은 계속 성장할 것이고 항공과 해운은 상대적으로 피크오일의 피해를 덜 받을 것이라는 것.

블룸버그는 "그러한 추정은 확신할 수 없다"며 "석유화학의 각종 대안이 개발단계에 있다. 또 소형 전기비행기와 장거리용 하이브리드 항공기가 시제품 단계를 넘어섰다. 유조선이 수소로 운항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일단 어떤 기술이 규모와 가격 동등성을 달성한다면, 시장의 조건은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미 석탄시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석탄은 수십년 동안 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더 저렴한 천연가스와 신재생 에너지가 등장하면서 몰락했다. 미국의 석탄 수요는 2008년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9년 뒤 세계 최대 석탄생산기업 피바디에너지는 파산했다.

새로운 석유가 된 태양

지난 세기 운수송 연료와 전기 발전은 거의 완전히 분리된 산업이었다. 석유는 차량, 석탄은 발전이었다.

석유시추업자 대 광산업자, 산유국 대 각종 발전소를 돌리는 나라들로 나뉘었다. 양쪽을 겸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수년 동안 석유업계는 석탄 부문에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봤다. 그럼에도 자신들에겐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메이저 석유회사인 코노코필립스 CEO 라이언 랜스는 2015년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전기차가 석유수요에 물리적 충격을 가하려면 50년은 지나야 할 것"이라며 "내 살아생전엔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고 말했다. 5년 전 랜스의 견해는 널리 받아들여지던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석유산업계에서 그같은 주장을 하는 이는 거의 없다.

운수송 차량의 전기화는 신재생 발전시장과 동반 성장하고 있다. 이제 태양광발전은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신재생 에너지 창출의 가장 저렴한 형태가 됐다. 블룸버그는 "발전시장이 전기차의 새로운 수요를 충족할 만큼 성장하게 되면 석유는 더더욱 외면받을 것이라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전환을 예상하는 건 힘든 작업이다. 지난 20년 동안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기본 시나리오에선 태양광이 지속적으로 과소평가됐다. IEA 추산모델은 해마다 태양광 성장률을 평탄하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정반대였다.

결국 IEA는 올해 태양광에 대한 견해를 전면 수정했다. 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2020년 세계에너지 전망' 보고서 도입부에 "태양은 전력생산의 새로운 왕좌"라며 "오늘날 각국의 정책기조에 기반해 추산한 결과 태양광은 2022년 이후 매년 새로운 기록을 써내려갈 것"이라고 인정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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