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임금체계·고용 유연화 압박 갈수록 거세
봄철 노사교섭서 전통적 기본급 인상·정기승급 손보기
일부 대기업 노조 저항에도 완만한 대세로 굳어질 듯
일본의 주요 대기업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임금인상과 임금체계에 변화를 주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기본급을 인상하면 거기에 연동해 각종 수당과 상여금이 오르고, 근속년수가 쌓이면 자동으로 올라가는 임금체계를 보다 유연하게 고쳐나가는 방식이다. 일부 대기업 노조가 저항하고 있지만 큰 흐름에서 사측이 주도하는 임금 및 고용체계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7일 일본 기업이 3가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임금과 고용의 유연화는 갈수록 확산될 것으로 예상했다. 우선 디지털화이다. 매킨지에 따르면, 2030년까지 일본 기업에서 27%의 업무가 인공지능(AI)이나 로봇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코로나19가 불러온 원격 시스템에 의한 재택근무 등의 확산으로 외국이나 원거리 지역에서도 업무가 가능해지면서 사무직과 전문직을 중심으로 비교적 임금이 낮은 국가나 지역의 인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아울러 기후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 제로' 정책의 확대로 일본 기업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가솔린 자동차 부품회사 등이 축소되고 고용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국내에서만 부품기업에서 30만명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커다란 도전에 직면한 일본 기업이 새롭게 정비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낮은 생산성으로 버텨 나가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평균적인 임금인상률은 2000년도 대비 미국과 영국이 70%, 프랑스와 독일은 50% 이상 상승했다. 하지만 일본은 거꾸로 5% 가까이 감소했다. 이처럼 일본의 임금인상이 거꾸로 가는 데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그만큼 더디다는 분석이다.
일본생산성본부의 추산에 따르면,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은 미국의 60%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과 독일 등 다른 선지국이 미국의 70~80% 수준에 달하는 데 비해 저조한 생산성을 보이고있다. 니혼총합연구소 야스이 주임연구원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투자가 일본은 미국의 30%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분석했다.
낮은 생산성의 원인으로는 경직된 고용과 임금체계를 지적한다. 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다보니 경쟁력이 낮아 수익이 나지 않거나 채산성이 떨어지는 데도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노조도 고용과 임금체계를 바꾸려는 시도에 저항하고 있다. 혼다자동차와 미쓰비시중공업, IHI 노조는 기존의 기본급 인상 방식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조의 저항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유력 기업들이 속속 임금과 고용체계의 유연화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히타치제작소는 2024년까지 직무급 임금체계와 보다 유연한 고용시스템을 목표로 기업내 모든 분야에서 올해 9월까지 직무내용과 요구되는 기능 등을 정비하고 있다. 직원들은 현재 요구되는 기능과 실질적인 직무능력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재검토해 적절하게 인력을 재배치하고 임금체계도 거기에 맞게 정비하겠다는 방침이다.
히타치 사측은 올해 춘투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노조측에 자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히타치 고위 관계자는 "책임자급 관리자들이 모든 직원과 개별적으로 대화를 통해 필요한 교육연수를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KDDI도 전문성과 성과를 기초로 급여를 결정하는 독자적인 직무급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고, 전사원을 대상으로 올해부터 도입을 목표로 노사가 협의를 진행중이다.
이와 관련 일본 기업의 노사교섭을 주도하는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노사교섭에서 노조가 요구한 월 9200엔의 임금인상을 사측이 전적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노조는 전통적인 방식의 기본급 인상안을 버리고 총액 인상안만 제시해 변화를 보였다. 노조가 사실상 사측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은 17일 "임금과 상여금은 (노조가) 요구한 대로 한다"면서도 "임금인상 이상으로 지금의 도요타는 자동차산업 전체의 미래를 떠안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노사협의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은 전통적으로 기본급을 일률적으로 인상하는 방식인 이른바 '베이스업' 임금체계와 임금인상 방식을 유지해 왔다. 따라서 기본급을 한번 올리면 기업의 실적이 악화해도 다시 내리기 어려운 구조이다. 기본급과 연동한 사회보험료와 시간외 근무수당, 상여금 등도 자동적으로 인상됐다. 여기에 근로자의 근속연수에 따라 급여가 자동으로 늘어나는 정기승급 방식이어서 근로자의 임금체계가 경직적이고 생산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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