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관계를 묻다

반려동물의 숨겨진 감정, 인공지능이 읽다

2025-01-20 13:00:03 게재

친구 표정 따라 짓는 고양이 등 사회적 유대 과학적 증명… 결국 본질은 ‘관계’에 대한 해법 찾기

민족 최대 명절인 설. 가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시기다.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은 기본,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진화 중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공통적인 사항은 하나 있다. 바로 ‘관계’에 대한 갈증이다. 기술이 발달해도 사회가 급속도로 달라져도 결국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그리워하며 손을 내민다.

“우리 집 반려동물이 무슨 생각을 할까?”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상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가족 친지들과 오래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풍경이 익숙하다.

하지만 최근 ‘반려 가족’이 증가하면서 고양이나 개 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명절 모습이 다양해지고 있다. 덕담을 주고받는 가족들 사이로 종종걸음을 치며 이 사람 저 사람 얼굴을 살피는 반려동물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세배하는 게 뭔지는 알까?” “왜 떡국을 먹는지 알까?” 등 반려동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번쯤 궁금해했을 것이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지난 7~1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5’의 최대 화두가 단연 인공지능이었던 것처럼 이젠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본 요소가 되는 분위기다.

2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의 논문 ‘인공지능 기반 분석을 통한 고양이 얼굴 표정의 사회적 기능 연구(Computational investigation of the social function of domestic cat facial signals)’에 따르면, 고양이들은 얼굴 표정을 활용해 활발하게 의사소통을 한다. 특히 서로 친근한 관계에서는 표정을 따라 하는 ‘빠른 얼굴 모방(RFM)’ 현상이 활발하며 공감도가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친화적 상태에서 RFM 현상이 더 많이 일어났다(평균 2.45회). 비친화적 상태에서 RFM 현상은 평균 1.85회였다. 고양이의 상호작용이 친화적인지 비친화적인지 확인한 정확도는 약 77%다. RFM 현상은 사람 개 말 오랑우탄 등 포유류들이 사회적 유대감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과학적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2021년 8월부터 2022년 6월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비영리 구조댄체인 ‘캣카페 라운지(CatCafe Lounge)’에 있는 고양이(성체) 53마리(암컷 27마리와 수컷 26마리(모두 중성화))가 교류하는 186개 상황을 비디오로 기록했다.

이후 고양이 얼굴 근육 움직임 코딩 시스템(CatFACS)으로 수동 분석한 자료들을 토대로 인공지능 기술(YOLOv8, BoT-SORT 등)로 고양이 얼굴을 자동 검출하고 추적했으며, 트리 기반 기계학습 자동화 도구(TPOT)로 친화적 혹은 비친화적 상호작용을 분류했다. 이를 통해 고양이의 감정 상태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분석했다.

CatFACS는 인간의 얼굴 동작 코딩 시스템(FACS)과 유사한 원리다. FACS는 인간의 감정이나 얼굴 모방과 관련된 표정 변화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다. 최근 다른 동물들에게도 확장돼 활용 중이다.

물론 이 연구는 △실험 환경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소리 자극을 배제하지 못했고 △13만9680개에 달하는 영상 프레임 중 약 절반 정도만을 인공지능이 감지했다는 점 등 한계가 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고양이의 사회적 인지 능력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의미가 있으며 실제 반려동물 관리와 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향후 동물 행동 연구에서 인공지능 기술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얼굴 표정으로 동물 감정을 파악하는 일은 고양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을 활용하기 전에도 다양한 동물들의 감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노력은 꾸준히 이뤄져 왔다. 국제 학술지 ‘동물 인지(Animal Cognition)’에 실린 논문 ‘상황별 개의 감정 지표로서 얼굴 표정의 정확성 평가(Evaluating the accuracy of facial expressions as emotion indicators across contexts in dogs)’에서는 개들은 긍정적 기대와 좌절 상황에서 뚜렷하게 다른 얼굴 표정을 보이며 공감도가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긍정적 상태에서는 ‘귀 내밀기’ 표정이 더 많이 나타났고(주로 보상 기대 시), 부정적 상태에서는 △눈 깜박임 △귀 뒤로 접기 △입술 벌어짐 등의 표정이 관찰됐다. 개의 감정 상태를 얼굴 표정으로 분류한 정확도는 약 77%다.

연구진은 2021년 베른 대학교 수의학 캠퍼스에서 래브라도 리트리버 28마리(암컷 14마리, 수컷 14마리(모두 중성화))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음식과 장난감을 보상으로 제공하며 개 얼굴 근육 움직임 코딩 시스템(DogFACS)를 활용해 개들의 얼굴 근육 움직임을 분석했다.

이후 통계적 방법으로 긍정적, 부정적 상황에서의 얼굴 표정 변화를 추적하고 분류했다. 물론 이 연구는 △단일 품종(래브라도 리트리버)만을 대상으로 했고 △모든 감정 상태를 완벽히 예측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표정으로 감정을 파악하는 건 당연한 것 아냐?’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양한 상황에서 표정의 일관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얼굴 근육 움직임을 객관적 지표로 전환할 수 있다면 반려동물 복지 증진은 물론 궁극적으로 더 나은 공존을 위한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셈법과 복잡한 과학적 원리로 치장을 하더라도 본질은 ‘관계’에 대한 더 나은 해답을 찾고 있는 셈이다. 인간은 좋든 싫든 ‘복잡계(complex system)’에 속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나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에너지들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다. 인간은 관계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긴 설 명절 연휴 시작이 일주일 남짓 남았다. 올해는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가족 얼굴을 한번 살펴보는 건 어떨까. 의외로 우리는 가장 소중한 존재의 마음을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 설명

계와 복잡계 = 물리학 생물학 등 과학에서 계(system)는 중요하다. 광범위하고 서로 다른 법칙들이 지배하는 공간들을 총체적으로 연구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때문에 연구 대상이 존재하는 시간적 공간적 범위를 설정하는, 즉 연구 대상이 어떤 계에 속하는지부터 정의하고 이해하는 일이 연구 첫걸음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이는 우리 사회와도 닮은 구석이 많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특정 집단의 일부로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한 층위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새로운 문명을 일궈 나간다.

최근에는 물리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복잡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직까지 명확한 기술적 정의 등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상호작용하는 많은 부분으로 구성된 체계로 의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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