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명박산성과 탄핵공간의 ‘진공작전’
2008년 봄은 뜨거웠다. 국민 건강권과 직결된 정책이 국민 공감 없이 추진됐다. ‘광우병’ 논란은 정권 규탄의 불씨를 댕겼다. 어린 학생들부터 20~30대 청년, 40~50대 직장인까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쏟아졌다. 넥타이·유모차 부대가 거리를 메웠고, 하이힐 신은 여성들도 모래주머니를 날랐다.
그때 기자는 기획팀(사회부) 신참이었다. 매일 해질녘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서울시청·광화문 일대를 돌며 현장을 지켜봤다. 당시 경찰은 촛불을 대화 아닌 진압과 해산의 대상으로 여겼다. 시민들 눈에 비친 경찰은 ‘권력의 몽둥이’였다.
충돌을 거듭하는 동안 물대포·최루액 분사는 일상이 됐다. 한 여대생이 군홧발에 짓밟히는 아찔한 사건도 있었다. 몸싸움에 휩쓸리면 연행되기 일쑤였다. 취재기자들도 여럿 ‘닭장차’ 신세를 졌고 기자도 그중 하나였다.
그해 6월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은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화물용 컨테이너를 2층 높이로 쌓아 용접하고 윤활유까지 발라 ‘명박산성’을 만들었다. 시위대의 청와대 행진을 막으려 세종로 일대를 진공상태로 만든 경찰은 권력의 몽둥이 이미지에 정점을 찍었다.
2024~2025년은 정치초보 권력자의 벼랑 끝 기행으로 온 나라가 겨우내 홍역을 앓았다. 헌법재판소가 국민 상식의 혼란을 4개월 만에 끝냈다면, 그 기간 상식의 붕괴를 막고 버텨낸 것은 경찰이었다.
최고수뇌들이 내란혐의로 직을 잃고 초유의 경찰청장 권한대행, 서울청장 직무대리 체제를 맞았지만 이후 경찰이 보여준 모습은 16년 전과 완전히 달랐다. 물대포·최루액은 없었다. 대신 ‘대화경찰’이 현장을 누비며 갈등관리에 나섰다. 완충구역을 만들어 탄핵 반대측과 찬성측의 충돌을 최소화했고 취재기자 지원과 보호에도 공을 들였다.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헌법재판소 주변을 ‘진공상태’로 만든 작전은 명박산성과는 반대의 의미로 화룡점정이었다. 경찰을 향해 “수고 많았다” “감사하다”는 시민들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경찰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집회대응 잘 했다고 칭찬받아 본 건 처음”이라며 멋쩍어했다.
서슬 퍼런 현직 권력에 ‘불복종’하는 모습도 과거엔 보기 힘든 것이다. 101경비단 등 대통령 경호부대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상부와 경호처에서 요구받았지만 응하지 않았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와 관련해 법원에서 발부된 체포영장은 적법하다는 판단이었다.
16년 전 과잉진압과 명박산성으로 충성을 과시한 어 청장은 이후 경호처장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이제는 권력의 부당한 지시 속에서도 상식의 끈을 놓지 않고 중심을 지킨 경찰들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재걸 기획특집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