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한미 통상협상 서두를 필요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 20일 취임 후 하루도 빠짐없이 뉴스를 쏟아낸다. 특히 주요 교역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등 고강도 통상정책으로 전세계 무역질서를 흔들고 있다.
그의 생각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미국의 제조업을 위협하는 다른 나라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부과로 가격경쟁력을 낮추고, 이게 싫으면 미국에 공장을 세워 제품을 생산하라는 것이다. 트럼프 머리속에는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of the America, by the America, for the America)’ 생각만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 협상과정에서는 일부 국가나 제품에 관세를 면세하는 등 초기의 강경입장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산 일부 상품 면세,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 90일 유예, 아이폰 및 전자제품에 대한 중국관세 면세, 중국에 대한 관세 90일 유예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몇주간의 국가간 협상과정과 트럼프의 입장변화를 보면 시장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불확실성이 크지만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음을 시사한다. 트럼프의 타깃에서 벗어나 버티면 손해 볼 일 없는 분위기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현재 모습을 보면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는 느낌이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이 이끄는 정부 대표단은 20~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 관계자 등과 제2차 기술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불과 2주일 후면 새정부가 탄생할 텐데 왜 굳이 서둘러 20여명의 대표단을 파견했을까.
정부도 꺼림칙한 게 있었든지 ‘협상’이 아니라 ‘협의’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앞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에도 대미협상을 자신의 대선출마용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비판이 있었던 만큼 정부의 모습이 선의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런 만큼 지금이라도 무엇인가 액션을 취하려 하지 말고 새정부에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맞다.
‘트럼프가 쏘아올린 무역전쟁’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 사상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스미스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타국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소비자 후생을 해치고 무역왜곡으로 국부를 감소시킨다고 경고했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따라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도록 정부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트럼프의 통상정책은 단기적으로 특정산업 보호에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보복관세, 공급망 불안정, 물가상승 등 부작용을 초래한다. 따라서 한국은 단기적인 압력에 굴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업별 영향분석과 대응 시나리오를 충분히 세운 후 새정부가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재호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