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한국 항모론’ 브런슨 사령관의 무례

2025-05-28 13:00:00 게재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과 같다.” 5월 15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하와이 태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에서 한 이 발언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주권국 한국을 미국의 전략자산처럼 간주한 외교적 결례이자 군사적 오만이다.

‘불침항모(Unsinkable Aircraft Carrier)’란 표현은 1983년 일본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스스로 사용한 바 있다. 브런슨 사령관은 한국과 어떤 협의도 없이 이 용어를 가져왔다. 그는 한국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펼쳤고 대만해협 충돌 시 한국 일본 필리핀은 자동개입된다고 단정했다.

이는 2006년 1월 19일 발표된 한미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 제2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발언이다. 해당 문건은 ‘한국민의 의지와 무관하게 미국이 지역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5년 공군사관학교 연설에서 “한국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럼에도 브런슨 사령관은 한미 간 합의와 한국의 입장을 무시하고 주한미군의 작전범위를 일방적으로 확장하려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새 대통령은 한미일 동맹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발언이다. 선출되지도 않은 한국의 지도자에게 전략적 결정을 강요하는 이례적이며 부적절한 언사다. 동맹은 협의의 틀이지 명령체계가 아니다.

브런슨은 지난 4월 상원 청문회에서도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우리는 해야 할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1954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외부 무력공격’이 있어야 발동되는 조건부 조약이다. 대만해협 사태가 한국의 안보를 직접 위협하지 않는다면 해당 조약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을 단지 전략 지도 위의 전진기지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정부와 정치권은 침묵하고 있다. 탄핵 이후 조기대선을 앞둔 정치공백 속에서 외교안보라인은 사실상 기능을 멈췄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입을 닫았고 정치권도 실질적 대응 없이 상징적 언사에만 머물고 있다.

한미동맹은 상호존중과 이익 위에서 유지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면 그 전제는 분명하다. 한국 안보에 공백이 없어야 하며, 반드시 한국정부와의 동등한 협의가 있어야 한다. 얼마 전 미국쪽에서 거론된 주한미군 4500명 감축론도 마찬가지다.

거듭 밝히지만 한국은 항공모함이 아니다. 주권국의 입장과 운명은 타국의 전략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 그런데도 동맹의 이름으로 무례가 반복된다면 누군가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이 동맹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항로는 누가 정하고 있는가라고.

정재철 국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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