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기후, 기회의 재발견 ①

지구 허파 ‘맹그로브’가 지역 경제도 살린다

2025-06-09 13:00:02 게재

탄소순환에 중요 역할하는 제주 ‘황근’ 기후변화 대응 기대 … 상호 연결된 생태계의 간접 영향까지 고려해야

성장에 무게중심을 둔 이재명정부는 AI미래기획수석을 신설하면서 기후환경에너지를 한 우산 아래에 뒀다. AI미래기획수석실이 향후 정부 핵심 국정과제를 이끌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대전환이 이번에는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기대가 높은 상황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기존 관성에 익숙한 이들은 변화를 두려워할 테고 그에 따른 고통을 감내하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함께하는 미래 성장’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기존의 것을 포기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급속도로 지구환경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했을 뿐 지구는 다양한 영역에서 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요소들을 이미 배치해 놓고 있다. 이런 알토란 같은 해법들을 찾아내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존 틀을 깨부수는 융합의 시선이 필수다.

내일신문은 급변하는 세계 기후환경에서 성장과 미래 지속가능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기회의 재발견 현장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변화는 쉽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현장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오조리마을에는 7~8월 노란 황근 꽃이 핀다. 사진 고기봉 전 오조리장 제공

“황근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요. 바닷물과 용천수가 만나는 오조리마을에서 친구들과 수영하면서 놀고 물고기도 잡고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죠. 황근이 탄소흡수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건 최근에 알았어요.”

4일 제주도 서귀포시 오조리마을에서 만난 강영효 오조리장의 말이다. 강 오조리장은 오조리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50여년 한평생을 이곳에서 보낸 그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조리마을의 아름다움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조리마을은 성산일출봉에 해가 뜨면 가장 먼저 빛을 받는 곳이다.

“지금은 초록색으로만 보이지만 7~8월이면 노란 황근 꽃이 가득 피어나요. 많은 이들이 함께 보고 지구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 좀 머물다 가는 관광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렇게 예쁜 곳을 잠깐 보고 가기에는 아쉽지 않을까요?” 강 오조리장은 이렇게 말하며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맹그로브는 육지와 바다 사이 조간대에 서식하는 식물집단이다. 특정 나무 종이 아니라 염분이 있는 연안 환경에 사는 여러 나무 종들을 총칭한다. ‘지구의 허파’ 혹은 ‘지구의 탄소 저장소’라 불릴 정도로 탄소 순환에 큰 역할을 하는 존재로 알려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생태학적 경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맹그로브는 서식지와 적응 정도에 따라 크게 △진정 맹그로브(true mangrove)와 △준 맹그로브(mangrove associate)로 나눌 수 있다.

진정 맹그로브는 조간대에만 서식하며 조수 유입이 있는 환경에 특화된 구조적 특징(물 위로 뻗은 뿌리 등)을 가진다. 반면 준 맹그로브는 조수 인접 지역뿐만 아니라 육지에도 산다. 염분에 대한 내성이 있지만 진정 맹그로브와 같은 구조적 특성은 없다. 제주도 해안 지역에 있는 맹그로브인 황근과 갯대추는 준 맹그로브에 속한다.

제주도는 7~8월 오조리 수산봉 일대에서 ‘황근 꽃길 걷기’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제주도 측은 “숲과 연계한 마을 생태관광 활성화를 통해 자연도 보호하고 경제적 효과도 거둘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주도 서귀포시 오조리마을 일대에서는 준 맹그로브인 황근을 볼 수 있다. 사진 김아영 기자

◆세계는 생물다양성 보전과 기후변화 대응 공동 효과 증진 중 = 탄소중립을 위해 각 분야에서 조금이라도 온실가스를 덜 뿜어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한국환경연구원의 ‘생물다양성 보전을 통한 생태계 탄소흡수원 확대 방안(Ⅲ)’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국가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보전과 기후변화 대응 등 공동효과 증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국가 수준과 지역 수준에서 수립하고 이행 중이다.

새로운 탄소흡수원 발굴이 대표적인 예다. 2021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6)’에서 블루카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고 각 국가별로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탄소가 포함된 환경에 따라 블랙카본 그린카본 블루카본 등으로 분류된다. 블루카본은 해안생태계와 해양생태계에 흡수돼 저장된 탄소다. 국제적으로 인증받은 해양 탄소흡수원(블루카본)은 맹그로브 잘피(해초류) 염습지 등이다.

맹그로브는 △진정 맹그로브 △준 맹그로브 등으로 나뉠 수 있다. 염분에 내성이 있고 물 위로 뻗은 뿌리가 있는 맹그로브를 진정 맹그로브라 한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국제 학술지 ‘연간 해양과학 리뷰(Annual Review of Marine Science)’의 논문 ‘맹그로브 숲의 탄소 순환과 저장(Carbon Cycling and Storage in Mangrove Forests)’에 따르면, 맹그로브는 전세계 연안 면적의 약 0.5% 정도에 불과하지만 해안 근처 바닥에 쌓이는 진흙이나 모래(연안 퇴적물) 등에 저장되는 탄소의 10~15%(연간 24Tg)를 담당한다. 또한 강물을 통해 바다로 흘러가는 유기물 등과 같이 해양으로 배출되는 육상 입자성 탄소의 10~11%에 기여한다. 전체 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탄소순환에 기여하는 역할은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한국환경생물학회지의 논문 ‘제주도 황근 잎의 기체 교환과 자생지에서의 토양호흡’에 따르면, 황근의 토양호흡과 광합성 활동은 기온 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토양호흡과 순광합성률 간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논문에서는 이 결과를 토양호흡이 계절을 동반한 기온뿐만 아니라 광합성에 의한 이산화탄소 흡수에 영향을 받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했다. 이는 곧 황근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토양에 저장하는 탄소순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요환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과 연구팀은 제주도 황근 자생지 3개 지역(김녕 성산 위미)에서 2022년 6~10월 토양호흡과 잎의 기체교환을 측정했다. 8월 토양호흡(5.7±0.8μmol CO₂ m⁻²s⁻¹)은 10월 대비 약 4.4배 높았다. 또한 10월에는 8월 대비 약 1/4 수준으로 급감했다. 잎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광합성 활동(순광합성률)은 개화 시기이기도 한 7월에 최고치(9.0±0.9μmol m⁻²s⁻¹)를 기록했다.

기공이 많이 열릴수록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으며 물을 많이 증발시킬수록 광합성도 더 활발해진다. 광합성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토양호흡도 증가한다. 잎에서 만든 영양분이 뿌리로 이동해 토양 미생물 활동을 촉진하는 특성상 토양호흡과 광합성은 서로 연결된다. 즉, 계절에 따른 식물 생장이 토양호흡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국내 상황에 맞는 탄소순환모델 필요 = 탄소흡수원 확대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행여 다른 부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영향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생태계의 모든 현상은 서로 연결되고 다양한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난다. 최근 특정 현상이 하나의 원인으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폭넓게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탄소흡수만 강조하다 보면 생물다양성이 손실되거나 다른 오염물질이 나올 수도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함께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장기적으로 탄소흡수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게 중요합니다.”

2일 구경아 한국환경연구원 자연환경연구실 연구위원은 “최근 유엔 등에서는 환원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나 자연을 전체론적으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며 “복잡한 생태계 특성상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간접적인 영향들이 훨씬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근 꽃.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자연적으로 형성된 생태계가 탄소흡수원 역할을 한다고 해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형성한 흡수원이 제 기능을 한다는 보장도 없다. 때문에 사람이 심은 맹그로브도 과연 엄청난 양의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만큼 효율적으로 탄소를 저장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지 등과 관련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국제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의 논문 ‘40년 자료에 따르면, 인위적으로 심은 맹그로브의 탄소 저장량은 자연적으로 성숙한 숲의 최대 75%다(Four decades of data indicate that planted mangroves stored up to 75% of the carbon stocks found in intact mature stands)’에 따르면, 사람이 맹그로브를 심은 뒤 약 20년 만에 바이오매스 탄소 저장량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맹그로브 숲의 71~73% 수준에 도달했다. 또한 맹그로브 한 종류만 심기보다는 여러 종류의 나무를 함께 심을 때 바이오매스 내 탄소 축적을 최대화할 수 있었다. 바이오매스는 특정 지역이나 생태계 내에 존재하는 생물의 총량이다. 바이오매스 탄소 저장량은 생물체, 주로 식물의 바이오매스에 저장된 탄소의 총량이다.

연구진은 “맹그로브를 심은 뒤 첫 5년 동안 토양 탄소 저장량이 약 25% 증가했지만 그 이후에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관찰되지 않았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 토양 탄소 저장량의 75% 수준에서 일정하게 유지됐다”며 “이는 맹그로브를 심는 일이 토지 이용 변화로 인한 추가적인 탄소 손실을 효과적으로 방지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24개국 181개 지형(△하구 △삼각주 △해안 등)에서 복원 혹은 조림된 맹그로브 숲 809곳에서 수집한 △지상 바이오매스(AGB) △지하 바이오매스(BGB) △토양 탄소 저장량(1m 깊이까지) 자료와 이들 숲 근처에 있는 185개 지역에 분포된, 조림되지 않은 자연적인 숲 475곳의 자료들을 토대로 베이지안 논리 모형 등을 통해 분석한 결과다.

베이지안 추론은 베이즈 추론이라고도 불린다. 자료들을 주어진 조건에 맞게 적응하도록 동적으로 분석할 때 주로 사용된다. 인공지능에서는 사전 자료들로부터 배운 지식을 추가 자료들로 조건에 맞게 갱신할 때 활용한다.

국내 상황에 맞는 황근 등 탄소순환모델 개발도 필요하다. 진정 맹그로브와 준 맹그로브는 환경조건과 수종이 다르기 때문에 해외 탄소순환모델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탄소순환모델은 대기→식물→토양 등 생태계에서 탄소가 어떻게 움직이고 저장되는지를 수학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숲이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지 등 산림 관리 정책을 수립할 때 과학적 근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제주=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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