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구상나무 비상, 예측형 보전 대책으로 진화 필요

2025-06-09 13:00:03 게재

기후변화 적응 속도보다

기후대 이동속도 더 빨라

“한라산 아고산대에서 구상나무 쇠퇴 현상이 심각한데, 이를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야 하는 시점입니다.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왔다면 이제는 절멸로 가는 속도 등을 추론할 수 있는 모델링 방법을 개발하는 식으로 한 단계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동안 구상나무 보호의 심각성에 대해 얘기해왔다면 이제는 대안 다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일 제주 한라산국립공원 영실코스 해발 1600~1700m 일대에서 자라는 구상나무들. 곳곳에 말라 죽은 구상나무들이 보인다. 구상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알려져 있지만 대한민국이 원산지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한국 고유종 제주 구상나무의 보전과 생물주권 확보를 위해 유전체 분석 프로젝트 계획을 5일 발표하기도 했다.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전 한국식물분류학회장)은 4일 이렇게 말했다. 한라산 구상나무는 한반도 기후변화 척도가 되는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으로 꼽힌다. 한반도 남부지방에만 자라며, 한라산과 지리산이 주요 집단 서식지다. 구상나무 등 상록침엽수들은 해발 1200m 이상의 서늘한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자생하는 특성상 기후변화로 인한 건조기후와 고온현상에 취약하다. 구상나무는 2013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됐다.

현 소장은 “구상나무의 경우 전지구적 평가와 지역적 평가 기준에 따라 멸종위기종에 해당하는 여부가 달라진다”며 “모델링 등을 통해 우리나라 구상나무가 실제 멸종위기에 있는지 IUCN 평가기준에 맞춰 증명하는 일부터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상나무는 전세계적인 멸종위기 등급을 평가하는 IUCN 적색목록에 위기(EN, Endangered)종으로 등재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반면 국내 적색목록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분류되지 않았다. 멸종위기종 지정에 기초가 되는 ‘관찰종’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온 상승률은 지난 100년 동안 약 1.7℃로 전지구 평균 0.75℃보다 2배 이상 빠르다. 제주도의 지구온난화 속도는 더 가파르다. 겨울철 기온이 꾸준히 상승하고 고온과 가뭄이 겹치는 확률이 높아지면서 구상나무 등 상록침엽수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기온이 오르면 식물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난대성 식생 분포대가 확대된다. 반면 구상나무 등과 같은 한대성 식생은 쇠퇴한다. 또한 구상나무 분비나무 등과 같은 고산 및 아고산지대(고산대와 산지대 사이 수직분포대) 식생의 경우 저지대에서 올라오는 수종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상황이다. 나아가 산림의 기후변화 적응속도보다 기후대의 이동속도가 더 빨라 멸종위기종이 증가하는 등 산림생물다양성이 감소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라산 조릿대. 구상나무 고사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흙이 유실되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한다.

물론 구상나무 고사 원인은 기후변화 외에도 다양하다. 5일 김종갑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생물권지질공원 연구과장은 “구상나무 고사 원인을 한가지로 예단해서 말하기는 어렵다”며 “2017년과 2012~2013년 대규모로 구상나무 고사 사태가 일어났을 때의 원인은 태풍과 가뭄으로 규명이 됐다”고 말했다.

한라산의 경우 조릿대(볏과의 여러해살이 식물로 복조리를 만들었다)와 노루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노루가 구상나무의 어린잎을 먹어치우면서 문제가 된다. 한라산에서 구상나무의 발아된 싹이나 그로부터 자라나는 작은 유묘를 거쳐 치수(稚樹)로 커 나가는 기간은 20여 년 이상 걸리는데, 이 기간에 노루 피해를 입게 되면 자연히 성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조릿대 역시 구상나무 치수들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을 점유하면서 비슷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제주=글·사진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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