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당원주권주의와 국민주권주의
더불어민주당이 ‘당원주권주의’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선거과정에서 “당원 동지들께 묻고, 당원 동지들께 보고하는 당원민주주의 실천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당대표 선거에 나선 정청래 의원은 “국민주권시대에 맞는 당원주권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당원들이 주요 정책, 인사(원내대표 국회의장), 공천 등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더 확장시키겠다는 의지다.
민주당의 당원민주주의는 이재명 대통령의 당대표시절에 빛을 발했다. 계파나 당내 지지기반이 취약했던 이재명 대표에겐 또다른 세력이 필요했다. 그는 ‘당원이 주인’이라는 논리로 국회의원에 집중돼 있는 권한들을 당원에게 옮기기 시작했다. 당원민주주의는 달리 말하면 ‘당권주권주의’였던 셈이다.
당원들이 당 운영에 쉽게 참여할 수 있게 했고 이제는 당원의 힘이 의원들에게 막강한 압박수단이 됐다. 최근 ‘박범계 법사위원장은 안된다’는 강성 지지층의 문자폭탄에 김 원내대표는 ‘아직 논의조차 안 한 사안’이라고 답했고 정 의원은 “여러분들의 뜻에 따라 잘 될 수 있도록 조율조정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당원주권주의’에 대해서 당 안팎에서 비판이 나온다. 강성지지층이 과다대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총선 공천과정에서 불거진 ‘비명횡사’ 논란이 친명계의 좌표찍기에 강성 지지층들이 호응한 결과라고 보는 시각 역시 적지 않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민주당원들의 이해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과연 헌법에 부응하는 것인지도 논란 대상이다. 모 민주당 다선의원은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표한다”면서 “강성 민주당 당원들의 문자폭탄을 두려워하거나 넘어서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당원주권주의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이 대통령이 이번엔 ‘국민주권주의’를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예로 들며 효율 성과 체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민이 직접 국정에 참여하는 국민주권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사 국정과제 등에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집권 초기 국민들은 이 대통령에 60%에 가까운 지지를 보냈다. 이 대통령이 말한 ‘모두의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일 게다. 침묵하거나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도 당연히 ‘모두’에 포함될 터다.
지지율이 떨어지거나 비판이 거세질 때마다 역대 대통령의 입에서 가장 많아지는 단어가 ‘국민’이었다. 이때 ‘국민’이라는 단어 앞엔 ‘대통령을 지지하는’이라는 보이지 않는 수식어구가 붙어 있었다. ‘모두의 대통령’을 말했지만 ‘그들의 대통령’으로 퇴임했다. 국민주권주의의 이 대통령이 기필코 피해야 할 상황이다.
박준규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