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산재, 발빠른 정책보다 맞춤형 대책을
이재명 대통령이 9일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여름휴가 후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한 첫 업무지시다. 이 대통령의 산재근절 의지가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소년공’ 출신인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감축에 대한 의지는 진심인 것 같다. 하지만 대통령이 연일 관심을 내비쳐도 사망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11일 경기 광주시 고산동의 한 철제빔 제조 공장에서 노동자가 철제빔에 맞아 사망했다. 같은날 평택시 한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에서도 4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중태에 빠졌다. 이 대통령의 진심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좀더 실효성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5인 이상 기업에도 적용됐다. 중처법 확대 적용은 산재 사망자 감소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노동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고사망자수 비율인 사고사망만인율은 지난해 0.39퍼미리아드(만분율)로 전년과 비교해 제자리걸음이다. 이는 법이 정책의 빈틈을 메우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산업현장은 구조적으로 산업재해에 취약하다. 중소·영세사업장은 안전관리체계나 전문인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산재 사고사망자는 137명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명 줄었다. 하지만 50인(건설업 50억원) 미만 사업장의 사고사망자는 83명으로 오히려 5명 늘었다. 정부는 중소·영세기업의 산재 대응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도 산재감소를 위해 풀어야 할 주요한 과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내재화 전면화되면서 기업이나 공공부문이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로 이전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 때문에 하청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비율이 높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노동자 김용균 사망사고와 올해 같은 곳에서 발생한 김충현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모두 하청구조에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발빠른 대응보다 시간이 걸려도 업종별 사고 원인의 특성을 정확히 진단해 꼭 맞는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좀처럼 줄지 않던 영국의 고질적인 산재사망률을 대폭 떨어뜨렸다는 평가를 받는 ‘로벤스 보고서’도 노사정 관계자 약 200명이 참여하고, 2년간 산업체 현장 방문, 산업시스템 검토 등을 거쳐 완성했다.
임기 내내 ‘산재 절반 감소’를 외치며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문재인정부의 경험이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장세풍 기획특집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