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에너지 체제 전환
탈탄소 건물로 ‘환경 - 경제 - 복지’ 선순환 구조 만든다
간접배출량 등 잘못된 정책 설계되지 않도록 고민 필요 … 히트펌프 등 새로운 정부 지원책도 강구해야
집 회사 학교 식당 등 이름은 다양하지만 건물이라는 영역에서 우리가 보내는 시간은 상당하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쾌적한 환경에 대한 요구는 늘어나고 덩달아 건물에는 과거와 다른 다양한 기능들이 탑재된다. 문제는 이는 곧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과도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코로나19 등 새로운 감염병의 위협으로 실내공기질 관리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하지만 발상만 달리하면 위기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미 개발된 히트펌프 인공지능 등의 기술과 정책 수요자의 관점에 맞춘 시스템 설계 등 우리에게 있는 품목들도 잘만 조합하면 환경 경제 복지를 함께 살리는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설정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건물 부문 온실가스 감축 관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024년 국가 온실가스 잠정배출량 통계에 따르면 건물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 대비 2.8% 감소했다.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도시가스 소비가 줄어든 게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2024년 국가 온실가스 잠정배출량 통계는 가장 최근 수치다. 확정치는 2026년 하반기에 공개된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만 보면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에너지 효율성은 악화된다는 분석이다. 건물부문의 경우 간접배출량을 산정하지 않는다. 발전부문에서 전기를 만들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건물부문에서도 계산하게 되면 통계상 중복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건물에서 전기를 많이 사용해도 온실가스 배출량만 보면 이 부분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잘못된 정책 방향 설정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건물부문의 경우 간접배출량 부분까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토교통부의 건물에너지사용량통계(2024년)에 따르면 건물부문에서의 에너지 총사용량(전기와 열 포함)은 2023년 보다 3.9% 증가(약 3588만8000 → 3727만5000TOE(석유환산톤))해 발전수요 증가(전년 대비 1.3%↑)에 상당 부문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건물 단위 면적당 에너지 총사용량도 증가(117 → 119kWh/㎡)했다.
22일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TS)로 관리가 되는 발전부문과 달리 건물부문은 전기사용량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재할 수단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며 “건물부문에서 전기사용량이 상당하고 더 큰 문제는 건물은 한 번 지으면 적어도 50년 이상은 지속되기 때문에 전기사용을 줄이는 경우 보상을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에 제대로 된 신호를 주기 위해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전기요금 정상화가 시급하다”며 “전기요금이 오르는 걸 대비해 에너지 복지 정책을 강화해서 취약계층이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도록 세밀하게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자체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도 중요 = 건물부문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자체에서 현실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할 수 있는 분야는 건물부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발상만 달리하면 지역주민 복지와 기후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녹색전환연구소의 ‘도넛으로 만드는 생태복지 도시-한국에서의 도넛도시 구현: 서울시 노원구와 충청남도 보령시 적용 사례를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노원구 탄소중립 기본계획에서 전체 온실가스 감축량의 48.6%를 건물부문이 차지한다.
또한 2023년 통계청 ‘주택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노원구는 서울시에서 30년 이상 노후주택 수가 가장 많은 자치구다. 서울시 전체 노후주택의 12.1%가 노원구에 있다. 서울시의 35년 이상 건물 가운데 16.94%, 25년 이상 건물 가운데 25.49% 이상이 노원구에 속한다.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 특성상 상대적으로 에너지효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곧 온실가스 배출 증가 요인이 될 수 있다.
‘도넛으로 만드는 생태복지 도시-한국에서의 도넛도시 구현: 서울시 노원구와 충청남도 보령시 적용 사례를 중심으로’ 보고서는 “기존에는 복지 향상을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필요하다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생태적 한계 안에서 복지를 달성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주거복지를 위해 공공지원으로 집수리를 하면서 단열 개선을 함께 진행하고, 태양광 설치를 덧붙이면 에너지 자립까지 이룰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이런 과정에서 지역의 집수리 업체들과 계약하면 지역 일자리 창출까지 연결되어 환경-경제-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며 “반대로 주거복지 해결을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해 대규모 개발을 하면 사회적 형평성과 생물다양성을 모두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국제 시장서 건물용 히트펌프 판매 증가 = 건물부문 에너지 관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히트펌프에 대한 관심도 다시 커지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세계 히트펌프 시장 및 정책 동향과 국내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발전과 수송 부문을 중심으로 탈탄소화 정책이 추진되어 오다가 2016년 유럽연합(EU) 열 전략이 발표되면서 히트펌프를 핵심 수단으로 건물부문 등의 열에너지 소비 탈탄소화가 중요 과제로 부각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2022년 세계 최종에너지 소비의 절반 가까이가 열에너지 소비에 해당하고 온실가스의 38%가 열에너지 소비로부터 발생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러한 인식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히트펌프 기술이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히트펌프가 상대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히트펌프 시장 및 정책 동향과 국내 시사점’ 보고서에서는 “근본적으로 난방과 같은 열 소비에 대한 탈탄소화가 국내 탄소중립 정책에서 아직 주목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히트펌프 활성화도 덜 되고 있다”며 “최근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전세계적으로 히프펌프 연간 판매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21년과 2022년에 세계 건물용 히트펌프 판매 증가율은 각각 13%와 11%를 기록했다.
영국은 열·건물 전략(Heat and Building Strategy)을 2021년 수립했다.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68% 이상 감축할 것을 공식화했다. 열·건물 전략에서 제시하는 정책목표 25개 중 약 10개가 모두 히트펌프에 초점을 맞출 정도로 건물부문 탈탄소화의 중요 정책으로 판단한다.
물론 이들 국가의 에너지시장은 우리나라와 다른 측면이 있다. 때문에 탈탄소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맞춤형 전략 수립이 시급한 상황이다. ‘세계 히트펌프 시장 및 정책 동향과 국내 시사점’ 보고서에서는 “국내에서 히트펌프가 정부의 정책적 지원 없이 자연적으로 보급 확대되기란 매우 어렵다”며 “우리나라의 주요 건물 난방 수단인 도시가스 보일러와 비교해 보면 고정비와 연료비에서 모두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동주택이 일반화되어 있는 국내 주거 체계에서 건설사들이 자발적으로 도시가스 보일러를 히트펌프로 대체할 유인은 없다”며 “낮은 가스요금과 전기요금 누진제에 따른 높은 연료비 부담, 히트펌프의 품질 보증 및 국가표준(KS) 인증 기준의 미비 등도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폐열을 활용한 지역난방보급 등 미활용에너지를 이용한 지역난방 보급을 활성화시키고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떨어져 지역난방이 들어가지 못하는 단독주택의 경우 히트펌프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해외에서는 히트펌프로 난방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우리나라 상황을 잘 고려해서 양면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 정부는 일정량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연간 배출권을 할당한다. 기업은 할당량 안에서 배출활동을 하면서 여유분을 시장에 팔 수 있다. 할당량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배출권을 사야 한다. 온실가스를 배출한 만큼 정부에 배출권을 제출하지 못하면 과징금을 내야 한다.
■히트펌프 = 외부 열원의 열에너지를 이용해 어떠한 열매체를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높이는 기술이다. 작동 원리에 따라 압축식 흡수식 흡착식 등으로 분류된다. 에너지효율에 대한 성능을 나타내는 성능계수(COP)가 얼마나 되느냐가 탈탄소화 기술로서 히트펌프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