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이시바카레와 안동찜닭
취임 80일을 갓 넘은 이재명 대통령의 첫 양자외교가 일본에서 시작됐다. 이번 이 대통령의 방일은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방문한 전례가 없다는 점,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일본 방문 이후 17년 만에 양국 정상의 논의내용을 문서 형식으로 발표했다는 점 등이 긍정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어느 일본 언론은 ‘기쁜 서프라이즈’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그럼 국내 반응은 어떨까. 언뜻 생각하면 이런 상황을 좋게만 봐도 될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외교라는 것이 자국의 국익을 챙기기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 본다면 한쪽이 얻으면 다른 한쪽은 잃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한일 정상 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손해를 감수한 부분은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이번 공동선언문의 과거사에 대해서는 김대중-오부치선언(1998년) 당시의 기존 역사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 워싱턴DC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정치권에서 통용되는 말이긴 하다”면서도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거냐”고 반문했다. 과거사 문제를 어영부영 넘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협력할 부분도 그냥 지나치는 게 맞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변해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간 협력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 그런 부분조차 놓치고 갈 수는 없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런 이 대통령의 의지를 일단 높게 평가하고 싶다. 차근차근 신뢰의 탑을 쌓아가면 ‘윈윈’의 영역으로 갈 수 있다는 이 대통령의 판단이 옳기 바란다.
다만 기존의 한일관계 패턴을 돌이켜보면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과거에도 정권 초기 한일간 분위기가 괜찮았던 때가 적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를 보라. 노 전 대통령과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는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편안한 차림으로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불거지는 일본 측의 망언이나 망동, 또는 과거사 현안 부상으로 그동안 공들여 쌓은 탑이 한순간 무너지곤 했다.
총리 주재 만찬에선 이시바 총리의 평소 레시피대로 만든 ‘이시바 카레’가 메뉴로 제공됐다. 이 대통령의 고향인 안동식 닭고기 음식인 안동찜닭도 메뉴로 올라왔다. 결이 다른 음식이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카레에 흔히 닭고기를 고명으로 올리기도 하니 두 메뉴의 조합이 ‘맛있는 서프라이즈’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두 정상도 이시바카레와 안동찜닭처럼 ‘맛있는 조화’를 이루며 한일관계를 한단계 격상시키길 기대해본다.
김형선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