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팔란티어의 질문에 답할 준비는 됐나

2025-10-14 13:00:01 게재

미국 데이터 분석업체 팔란티어가 최근 교육계에 던진 메시지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대학에 가지 말고 팔란티어에서 배우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 4개월간 월 5400달러(약 730만원)를 받으며 실무 중심 교육을 받는 채용형 트레이닝 프로그램이다.

지원 자격은 엄격하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대학 미진학 고졸자, SAT 1460점 이상의 우수한 성적, 그리고 파이썬 등 실무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춰야 한다. 팔란티어가 이런 파격적 제안을 한 이유는 기존 대학교육이 급변하는 기술환경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팔란티어의 실험적 시도는 결국 ‘배움과 적응 방식 자체를 바꾸라’는 메시지다. 이는 인공지능(AI) 기업들의 소수정예 성공 사례와도 맞닿아 있다. 이들의 성과는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바로 이런 능력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이 맡아야 할 핵심과제다.

대학 대신 팔린티어? 전통 교육에 던진 도발적 질문

실제 AI시대에는 소수의 인력만으로도 거대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메신저서비스 텔레그램은 30여명의 인력이지만 300억달러(약 40조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지 생성 AI로 잘 알려진 미드저니는 130명의 인력으로 105억달러(약 14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AI 코드 편집기 ‘커서(Cursor)’를 개발한 애니스피어(Anysphere) 역시 150여명의 직원으로 100억달러(약 13조원)에 이르는 평가를 받는다. 팔란티어 역시 4000여명의 직원으로 4300억달러(약 580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26만명의 삼성전자(약 410조원)를 뛰어넘었다.

이런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AI 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이나 소규모 조직도 과거 대기업만이 할 수 있던 일을 해낼 수 있게 됐다. 거대 조직 중심의 산업 시대에서 민첩한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교육이 여전히 대규모 조직 논리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조직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할 인재를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춘 교육 시스템이 과연 AI와 협업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시대에 맞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까.

이미 현실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법무법인에서는 계약서 분석과 독소조항 찾기를 AI가 담당한지 오래다. 광고 영상 제작비용은 수억원대에서 수백만원대로 급락했다. 이는 단순한 도구의 진화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의 근본적 변화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분명하다.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협력 파트너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민첩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는 소통 능력, 그리고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창의적 해결책을 찾는 역량이다. 이는 암기 중심의 주입식 교육으로는 기를 수 없는 능력들이다.

이재명정부가 발표한 교육 분야 6대 국정과제를 보면 AI 융복합 교육과정 확산, 부트캠프(집중적인 단기 교육 프로그램) 운영, 토의·토론·프로젝트 기반 학습 강화 등 바람직한 방향도 있다. 하지만 대표 공약인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상징되는 거점국립대학 집중 육성은 여전히 규모 확대 중심의 전통적 접근법이다.

개인이 AI와 협업해 기업 수준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시대다. 대학의 덩치를 키우는 것보다 작고 민첩한 교육·연구 허브들이 기업과 스타트업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육과정 교사양성부터 학교 조직문화까지 총체적 변화 필요

무엇보다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식 암기보다는 문제해결 과정을 경험하게 하고, 개별 학습보다는 팀 프로젝트를 통해 협업능력을 기르며, 정답 찾기보다는 질문 만들기를 가르쳐야 한다. 이는 교육과정 평가방식 교사양성 학교조직문화를 포괄하는 총체적 변화를 요구한다. 개인 맞춤형 AI 학습, 소규모 혁신 네트워크, 빠른 실험과 피드백이 가능한 교육 시스템 구축에 더 집중해야 한다.

청년정책 역시 주거안정 등 복지형 지원보다 개개인이 AI를 활용해 자신만의 창업과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대학 졸업장의 의미가 퇴색하고 AI 활용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 우리 교육도 이런 변화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 팔란티어가 던진 질문은 단순하지만 핵심을 찔렀다. 여기에 대한 솔직한 답변이 교육개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김기수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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