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가담’ 박성재 구속영장 또 기각
범죄 혐의 추가했지만 법원 “여전히 다툼 여지”
‘내란선동’ 황교안 영장도 기각…수사 차질 우려
12.3 내란 가담 의혹을 받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또 한 번 구속 위기에서 벗어났다. 내란 선동 등 혐의로 체포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구속을 피했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박 전 장관과 황 전 총리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잇따라 기각되면서 막바지에 접어든 내란 수사의 동력 약화가 우려된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남세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박 전 장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오후 늦게 영장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종전 구속영장 기각결정 이후 추가된 범죄 혐의와 추가로 수집된 자료를 종합해 봐도 여전히 혐의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불구속 상태에서 충분한 방어 기회를 부여받을 필요가 있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또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 및 수사 진행 경과, 일정한 주거와 가족관계, 경력 등을 고려하면 향후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박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법무부 실·국장 회의를 소집하고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교정시설 수용 여력 점검, 출국금지 담당 직원 대기 등을 지시하는 등 내란에 순차적으로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지난달 9일 박 전 장관에 대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박 전 장관의 위법성 인식 정도나 그가 취한 조치의 위법성 등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이에 특검팀은 박 전 장관과 관련자들을 재차 소환하고 박 전 장관의 휴대전화와 법무부 등을 추가 압수수색하는 등 보완수사를 진행해 혐의를 보강하고 지난 11일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특검팀은 특히 박 전 장관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하는 과정에서 ‘권한 남용 문건 관련’이라는 제목의 파일을 복원해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법무부 검찰과 소속 검사가 작성한 이 문건에는 ‘국회가 입법독재를 통해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는 등 계엄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은 이 문건을 계엄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4일 임세진 당시 법무부 검찰과장으로부터 텔레그램을 통해 전달받은 뒤 삭제했다고 한다. 박 전 장관은 문건을 전달받은 직후 ‘삼청동 안가 회동’에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회동에는 박 전 장관 외에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 등이 참석했다.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해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고 보고 직권남용 혐의 범죄사실에 이같은 내용을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안가 회동이 계엄 사후 대책을 모의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되는 만큼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법무부 교정본부 직원들이 박 전 장관의 ‘수용 여력 점검’ 지시에 따라 각종 문건을 작성해 보고하는 등 실제 계엄에 따른 조치를 이행하려 한 정황도 파악해 혐의에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영장심사에서 235쪽의 의견서와 163장의 PPT(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제시하며 박 전 장관의 구속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통상적·원론적인 지시를 했을 뿐 위법한 지시는 없었다는 박 전 장관측의 손을 들어줬다. 박 전 장관측은 ‘권한 남용 문건 관련’ 문서에 대해서도 예상되는 국회 질의에 대비한 것일 뿐 계엄을 정당화할 의도는 없었다고 소명했다고 한다.
두 차례 신병확보 시도가 불발되면서 특검팀은 추가 조사나 영장 재청구 없이 박 전 장관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길 것으로 보인다. 아직 제대로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안가 회동’ 등에 대한 수사 동력도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
내란 선동 등 혐의로 특검이 청구한 황 전 총리에 대한 구속영장도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박정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3일 황 전 총리의 구속영장을 심사한 뒤 다음날인 14일 새벽 “구속의 필요성이 부족하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 등 구속 사유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증거가 상당부분 수집된 것으로 보인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황 전 총리는 비상계엄의 위법성을 인지하고도 계엄 선포 당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계엄을 지지하는 글을 올려 내란을 선동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당시 페이스북에 “나라를 망가뜨린 종북주사파 세력과 부정선거 세력을 이번에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체포하라”는 등의 글을 게시했다.
황 전 총리는 정통 공안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등을 역임해 비상계엄의 위법성을 모를 리 없는데도 내란 선동을 목적으로 이같은 글을 썼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앞서 특검팀은 황 전 총리가 두 차례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세 차례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자 지난 12일 그를 전격 체포해 조사한 뒤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팀은 체포영장 등 집행과정에서 황 전 총리가 정당한 법집행을 거부해 수사에 지장을 줬다고 보고 공무집행방해와 수사방해 혐의도 추가했다.
하지만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서 황 전 총리의 신병을 확보한 뒤 추가 수사를 진행해 재판에 넘기려던 특검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박지영 특검보는 황 전 총리 영장 기각에 대해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나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 전 장관과 관련해선 “영장 기각 사유를 검토한 후 처리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