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평화안, ‘우크라 주권 보장’ 수정?
제네바 협상서 진전
변수는 러시아와 유럽
미국 국무부는 23일(현지시간) 회담 직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 구상안을 기반으로 업데이트되고 정교화된 평화 프레임워크(peace framework)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회담이 “상호 존중과 집중적인 분위기 속에서 매우 생산적으로 진행됐으며, 실질적인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가장 주목할 대목은 공동성명에 포함된 문구다. “어떠한 향후 합의도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온전히 보장해야 하며,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담보해야 한다”는 원칙이 명시됐다. 초기 평화안 초안에 비해 우크라이나 측 입장이 반영된 정황이 엿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초안은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도네츠크 및 루한스크) 지역 전체를 러시아에 양보하고, 병력을 60만명으로 줄이며,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 유럽의 집단방위 방식으로 안보 보장을 받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초안은 러시아 입장을 지나치게 반영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우크라이나와 유럽 각국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다.
이날 회담에 직접 참석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엄청난 진전을 이뤘고 기술적으로 문서화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며 “아직 남은 쟁점은 있지만 모두 극복 가능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가 다시는 침공이나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번 주 목요일인 27일 추수감사절 전에 합의가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측도 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안드리 예르마크 대통령 비서실장은 “첫 회의였지만 매우 생산적이었다”며 “우리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한 기반 위에서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미국 대표단과의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으며 트럼프 팀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신호가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진전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러시아의 반응은 여전히 미지수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유럽 측은 트럼프 초안에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며, 대체 제안을 이미 미국에 제출했다. 해당 문서에는 병력 상한을 60만명에서 80만명으로 확대하고, 돈바스 지역 포기를 거부하며, NATO 전투기를 폴란드에 상시 배치하는 등의 방안이 포함됐다.
또 미국이 제안한 동결 러시아 자산의 일부 수익을 미국이 가져가는 조항에도 반대하며, 해당 자산은 전쟁 배상 완료까지 보존된 뒤 우크라이나 재건에만 쓰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러시아의 반응이다. 러시아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며, 우크라이나 영토와 군사적 조건 등이 포함된 어떤 합의안도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