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로 축출한 미국 ‘함포외교’로 정책 개입
군사력 앞세운 경제제재로 정책전환 요구
베네수엘라 넘어 쿠바까지 압박하는 전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운영(run)하겠다”고 공언한 이후 워싱턴의 대 중남미 접근이 ‘함포외교(Gunboat Diplomacy)’로 구체화하는 양상이다. 직접 통치가 아니라 군사력과 경제 제재를 앞세워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이를 근거로 이번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는 단발성 사법 조치가 아니라 베네수엘라를 지렛대로 쿠바까지 압박하는 연쇄 전략의 출발점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시사잡지 애틀랜틱과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 대통령 권한대행 델시 로드리게스를 향해 “옳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매우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아마도 마두로보다 더 큰 대가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날 기자회견에서 로드리게스가 미국의 요구에 협조할 의사를 비공개로 밝혔다고 언급한 뒤 하루 만에 어조를 한층 끌어올린 셈이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향후 상황에 대해서도 “재건이든 정권교체든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며 개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다만 워싱턴의 선택지는 지상군 투입이나 장기 점령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미 해군 함대가 카리브해에 잔류하며 원유 수출을 봉쇄하고, 제재 위반 선박을 나포하는 방식으로 압박을 유지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군사적 존재를 전면에 내세워 정책 변화를 강제하는 전형적인 함포외교다. 앞서 트럼프행정부는 국방부 명칭을 ‘전쟁부’로 바꾸며 군사옵션을 전면에 두겠다는 상징적 메시지도 던진 바 있다.
트럼프 발언을 뒷받침하듯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연쇄 인터뷰에서 미국의 목표를 보다 명확히 했다. 그는 “우리는 베네수엘라라는 국가를 운영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운영하려는 것”이라며 이란·헤즈볼라 등 미국에 적대적인 세력의 영향력 차단, 미국으로 향하는 마약 밀매 중단, 석유산업 재편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런 변화가 나타나기 전까지 원유 봉쇄와 군사적 압박을 지속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 장관이 향후 베네수엘라를 ‘운영’할 것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 “정책을 운용한다는 의미”라며 선을 그었다. 전쟁부를 중심으로 한 군사력 시위와 외교·제재를 결합해 정책 전환을 끌어내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주목되는 대목은 이런 압박이 베네수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쿠바계 이민자 아들인 루비오 장관은 오래전부터 베네수엘라를 쿠바 사회주의 체제의 ‘전초기지’로 규정해 왔다. 아울러 베네수엘라 정권이 흔들릴 경우 쿠바 체제 역시 결정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논리를 일관되게 펴 왔다. 이번 마두로 체포와 해상 봉쇄가 그 구상을 현실로 옮기는 단계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베네수엘라는 수년간 쿠바에 하루 3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하며 에너지 생명선을 제공했지만 최근 미국의 제재 강화와 베네수엘라 연계 유조선 나포로 공급망이 크게 위축됐다.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으로 쿠바에서는 전력난이 심화해 일부 지역에서 하루 4시간만 전기가 공급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전언까지 나온다. 베네수엘라 압박이 곧바로 쿠바의 취약 지점을 겨냥하는 구조라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발언에서 쿠바를 “실패한 국가”로 규정하며 논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고, 루비오 장관은 이번 작전을 베네수엘라에 파견된 쿠바 정보·보안 기관에 대한 타격으로 평가하며 사실상 하바나를 향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베네수엘라를 넘어 쿠바까지 시야에 둔 전략임을 부인하지 않은 셈이다.
미 언론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선제적 경고와 루비오 장관의 정책 설명, 전쟁부로 개칭된 국방부 역할을 종합해 이번 베네수엘라 접근을 “군사력 시위와 경제적 압박을 결합한 함포외교의 노골적 선언”으로 평가했다.
한편 미국 언론에 따르면 전날 미군에 의해 체포돼 압송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미 동부시간으로 5일 정오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에 처음 출석해 기소 인정 여부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마약 밀매와 돈세탁 혐의로 시작된 사법 절차는 외교·군사전략과 맞물리며 점점 더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