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녀 돌봄 조부모 절반 “싫어도 거절 못 해”

2026-05-08 13:00:10 게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실태조사 결과

지자체 수당 한계, 장시간 노동 해결

주당 평균 27시간 손자녀를 돌보지만 조부모 2명 중 1명은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사정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는 ‘비자발적 돌봄’ 상황에 놓여있었고 이러한 부담은 여성에게 편중 됐다. 하지만 정신적 육체적 부담은 남녀 모두 상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여정연)은 8일 ‘가족 내 손자녀 돌봄 현황과 정책방안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25년 7월 28일부터 8월 18일까지 손자녀 돌봄 경험이 있는 만 55~74세 조부모 1063명(여성 660명, 남성 403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이 조사에 따르면 조부모는 평일 기준 평균 4.6일, 하루 평균 6.04시간 손자녀를 돌봤다. 주당 평균 돌봄 시간은 26.83시간에 달했다. 공적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조부모 돌봄을 필요로 하는 주된 이유는 부모의 노동시간과 가족 돌봄 우선 가치관, 사교육 필요 등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53.3%가 자녀 사정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는 ‘비자발적 돌봄’을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부담은 여성(57.5%)이 남성(44.6%)보다 12.9%p 높았다. 손자녀 외에 배우자 등 다른 가족 구성원까지 함께 돌보는 이른바 ‘다중돌봄’ 부담도 51.1%에 달했다. 이 역시 여성(56.4%)이 남성(40.1%) 보다 부담이 컸다.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했다. 손자녀 돌봄 이후 육체적 피로감이 증가했다는 응답이 73.7%, 정신적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늘었다는 응답이 60.4%였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질환이나 통증이 악화됐다는 응답도 47.8%였다. 이러한 부정적 변화는 여성 노인에게서 더 두드러졌다.

조부모 중 46.8%는 돌봄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특히 생후 0~1세 손자녀를 돌보는 여성 노인은 54.7%가 중단을 고려했다. 돌봄 중단을 생각하게 된 이유의 69.6%가 신체적·정신적 건강 문제였다.

반면 관계 측면에서는 긍정적 효과가 확인됐다. 조부모의 81.9%는 손자녀와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답했다. 68.8%는 손자녀 부모와의 관계도 개선됐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관계 개선 효과는 여성(66.5%)보다 남성 노인(73.6%)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다. 배우자와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응답도 남성(48.4%)이 여성(41.6%)보다 높았다.

조부모들이 기대하는 적정 돌봄 임금과 실제 지방자치단체의 조부모 돌봄 수당 사이의 괴리도 컸다. 지자체들이 지급하는 수당은 손자녀 1인당 평균 30만원 수준이지만 조부모들이 기대하는 적정 임금은 평균 107만원이다.

보고서에서는 “조부모 돌봄 부담의 구조적 기제가 부모의 장시간 노동과 경직된 노동관행인데 정책 개입은 이를 개선하기보다는 그 결과로 발생한 돌봄 공백을 사후적으로 보상하려 한다는 점에서도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마경희 여정연 선임연구위원은 “아동 돌봄 공백을 메울 해법으로 조부모 돌봄에 의존하기보다 부모가 일하면서도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도록 노동시간 구조와 관행을 바꾸고 공적 돌봄의 질과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부모의 돌볼 시간 보장을 위한 노동시장 시간 구조 재편 △미취학 아동 방과후 돌봄 질적 수준 제고 △초등 돌봄 양적 확대와 질적 개선 등을 핵심 정책 과제로 제안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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