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감사로 드러난 금감원 적폐│③ 자의적인 제재
'금융사 제재' 추상적·포괄적 잣대로 감경
부당행위 더 심한 유사사건, 제재 수위 가볍게 … 292건은 3단계 이상 감경
증권사 임원 A씨는 B사의 거래소 상장과 관련해 주식 공모를 위한 기업실사 등의 업무를 맡았지만 투자위험요소 파악과 중요사항이 거짓으로 기재된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은 A씨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주의' 조치라는 경징계로 사안을 마무리했다. '대표 주관회사의 인수업무처리 부적정'은 위법성이 중대할 경우 '면직'을 당할 수 있는 사안이다. 금융기관 또는 금융거래자에게 중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담당업무를 맡은 직원은 정직을 당했고 금감원은 A씨가 담당 직원의 차상위 상급자라는 점을 고려해 그 보다 두 단계 낮은 견책으로 징계 수위를 결정했다. 여기에 금융위원장의 표창을 받으면 1단계 감경을 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징계 수위는 주의로 떨어졌다.
감사원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심의 안건을 분석한 결과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규정 등을 근거로 감경이 이뤄진 사례가 전체 3517건(동일인 병합건 제외) 중 59.4%에 달하는 2089건이라고 밝혔다. 이중 3단계 이상 감경한 경우도 전체의 8.3%인 292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재 중 등록취소(기관) 해임권고(임원) 면직(직원) 등 가장 무거운 조치에 해당하는 사안(401건)도 절반이 넘는 54.4%가 감경을 받았다. 또한 정상참작·비교적 경미·상당히 경미 등 3가지 사유로 감경한 제재는 전체 4332건(동일인 병합건 포함) 중 39%에 해당하는 1690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 추상적 기준, 제재 형평성 훼손시켜 = 금융위원회가 고시하는 '제재규정'과 금융감독원의 '제재규정 시행세칙'에는 금융기관과 임직원에 대한 제재 감경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유를 보면 '위법·부당행위의 정도가 비교적 가벼운 경우', '위법·부당행위의 정도가 상당히 경미한 경우', '정상참작 사유가 있는 경우, '정상참작 사유가 큰 경우' 등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다.
규정 자체가 모호하면 감독당국의 자의적 제재 권한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감사원에 따르면 금감원은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자에게 특별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보험법 위반 과 관련한 유사 사건에서 다른 결론을 냈다.
보험설계사 4명이 보험계약자 4명에게 800만원의 특별이익을 제공한 사건에 대해 '기관경고' 조치를 내린 반면 보험설계사 3명이 보험계약자 30명에게 1140만원을 제공한 사건에 대해서는 '기관주의'로 더 낮은 수위의 조치를 취했다.
이밖에도 상호저축은행은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아 투자중개업을 해야 하는데 1800만원(4건) 가량의 투자중개업을 벌인 모 저축은행 전 대표는 '문책경고'를 받은 반면 6억100만원(21건)의 주식 중개를 한 다른 저축은행 전 대표는 거래규모와 건수가 더 크고 많았지만 '주의적 경고'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 감경기준 중복, 제재수위 판단근거 제시 안해 = 비슷한 유형의 위법·부당행위에 대해 제재 결과가 다르면 제재의 형평성이 의심받게 된다. 여기에 제재 수위에 대한 판단근거마저 제시하지 않으면 처벌받는 당사자들의 반발은 커지고 금융당국의 신뢰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금감원은 제재심의위원회와 금융위원회에 상정하는 안건을 작성하면서 제재 수위를 판단하게 된 이유 등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조치안을 만들면서 이미 정상참작을 했는데도 이를 알지 못하는 제재심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유사사유로 또다시 감경한 사례가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감사원은 "중복 감경과 자의적인 제재를 방지하고 제재대상자의 수용도를 높이는 등 제재의 공정성·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제재대상자에게 통지하는 검사서에 제재 양정(제재 수위)의 판단근거와 이유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의 제재규정과 금감원의 제재규정 시행세칙에 제재 감면 기준이 중복돼 있는 것도 중복 감경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금융위 제재기준에는 '위법·부당행위의 정도', '고의 중과실 여부', '정상참작' 등이 반영돼 있지만 별도 규정으로 기관 및 임원 제재와 관련해 '위법·부당행위의 정도, 고의·중과실 여부, 사후 수습노력, 자진 신고, 그 밖의 정상참작'으로 중복 규정돼 있다. 금감원 제재규정 시행세칙에도 비슷한 규정이 중복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유사한 사유를 제재기준 또는 감면기준으로 혼동해서 적용하고 있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금감원은 "(실무에서) 가담 정도와 위반 정도를 기본 제재기준(기본 양정)으로 고려하고 있는데 반해 감사원은 이를 감경사유로 판단해 (2~3단계 감경) 이러한 결과가 도출된 것"이라면서도 "구체적 기준이 없는 포괄적·추상적 규정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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