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조은희 화학물질안전원장

"정부 주도 화학물질 관리방식으론 한계"

2021-03-15 12:04:21 게재

4월 화학사고예방관리계획서 도입, 지역주민 역할 커져 … 한국형 안전 교육 강화 계획

"화학물질 안전관리는 '정부-기업-지역사회' 이 세 가지 축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새로운 제품, 기술 등이 나오는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과거 정부 주도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안전관리를 하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역할이 중요합니다."

조은희 화학물질안전원장│서울대 식품공학과 학사, 서울대 환경계획학과 석사(수료), 제32회 기술고시, 환경부 화학물질정책과장,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 참사관, 환경부 화학물질과장,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정보관리팀장,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과장 사진 이의종

 
9일 조은희 화학물질안전원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4월부터 사업장이 각각 제출하던 장외영향평가서와 위해관리계획서가 화학사고 예방관리계획서 하나로 통합이 된다. 일각에서는 화학물질 관리가 느슨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 하지만 조 원장은 지역주민의 역할이 높아지는 만큼 오히려 촘촘한 관리가 가능해진다고 반박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조 원장은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나 2013년 수원 삼성전자 불산 누출 사고 수습 업무를 담당하는 등 공직 생활 중 7년 정도를 화학물질 업무만 해왔다. 중앙부처 공무원이 한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근무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환경보건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제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개정 때도 역할을 했다. 조 원장과의 인터뷰는 충북 청주시 오송에 있는 화학물질안전원(안전원)에서 이뤄졌다.

■ 화학물질 안전관리는 산업단지에 국한된 일이라 생각하기 쉽다.

사실 화학물질로 인한 위험은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주거지역 가까이 크고 작은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들이 입지해 있는 경우도 많은 만큼 화학사고 예방과 관련한 교육은 필수다. 게다가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화학물질 구입이 쉬워졌다. 익명으로 온라인상에서 구입을 하거나 오남용을 조장하는 게시물이나 제품 정보들이 돌아다닌다. 생각보다 화학물질로 인한 위험이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안전원에서 대학생 주부 등 만 14세 이상 시민들로 구성된 사이버 감시단을 운영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서다. 시민들이 직접 인터넷상 화학물질 불법유통 게시물이나 폭발물 제조방법 등 유해정보들을 찾아낸다. 지난해만 이들 활동 덕분으로 1000여건에 달하는 위법 게시물들을 삭제할 수 있었다.

물론 공무원이나 다른 전문가들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화학사고는 생활 주변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인식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 초기 화학물질 업무를 담당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요즘 기업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나.

전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다. 물론 기업들이 초기에는 화관법에 따른 의무사항으로 화학물질안전관리에 힘을 쏟기 시작했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안전이 기업 경쟁력 제고에 필수라는 것을 기업들도 안다.

초기 화학물질 업무를 담당했을 때와 비교하면 화학물질 관리 체계에 틀이 잡혔다는 점이 다르다. 화평법에 따라서 물질 관리가 이뤄지고 화관법으로 화학사고 대응 체계가 체계적으로 정비됐다. 사고가 나면 유관기관과 실시간으로 화학물질 위험성과 대응요령 등을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도 만들어지는 등 유기적인 초등대응이 가능해지면서 인명사고도 줄었다.

하지만 현장을 다니다 보면 관리자와 근로자의 입장 차이가 있는 경우를 발견하곤 한다. 아직도 안전관리를 비용으로만 생각하는 관리자들이 있다. 안전 교육을 받기 위해 출장 결재를 올리면 위에서 싫어한다는 얘기를 하는 근로자들도 만난 적이 있다. 게다가 하도급 문제도 있다. 본사 직원들은 열심히 화학사고 예방 교육을 받더라도 하청 업체 직원들은 소홀히 하는 경우도 있다.

■ 지난해 발생한 화학사고 중 50.1%가 작업자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교육 등을 강조하지만 실제 사고가 났을 때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응급상황에서는 아무리 침착한 사람이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다. 몸이 저절로 움직일 정도로 안전교육이 베이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화학사고 안전 교육을 현장과 유사한 상황에서 체험형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가상현실교육(VR), 증강현실교육(AR), 화학사고 대응 훈련장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실제 설비와 사고 상황을 최대한 유사하게 구현하려고 했다. AR이나 VR에 탑재하는 시나리오들은 순수하게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제작했다. 모두 우리나라만의 시나리오들이다. 과거 일어난 사고 사례들을 일일이 분석해 최대한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사전에 파악하고 습득할 수 있게 하는 데 주력했다. 현장 상황에 맞는 우리나라만의 화학사고 안전 교육 과정과 교재를 개발하는 작업도 계속 하고 있다.

■ 4월부터 화학사고 예방관리계획서가 도입된다. 안전관리에 빈틈이 생기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촘촘한 화학물질 관리가 가능해 질 수 있다. 화관법 개정에 따라 화학사고 예방 관련 점검을 종전과 달리 사업장이 자체적으로 하게 된다. 이 자체 점검 결과를 정부에 제출하면 검토 뒤 특별점검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게 된다. 잘하는 곳은 칭찬을 하고 부족한 사업장은 보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게다가 이번 화관법 개정에 따라 지역 주민들의 역할이 높아진다. 4월부터 지역사회 차원에서 화학사고에 대비한 비상대응계획, 주민 대피 정보 등이 포함된 지역화학사고대응계획을 지역 주민들이나 사업장에도 공개하도록 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정부 주도의 화학물질 안전 관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안전관리를 하는 게 체화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역 사회 알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 과거 화학물질 정보 공유에 대한 기업들의 반발이 강했다. 화학물질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운영 중인데, 주요 논쟁 사항이 무엇인가.

화관법의 기본 원칙은 화학물질 배출량 정보와 통계조사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예외를 둘 수 있는 단서조항이 있긴 하다. 화학물질 전문가들로 구성된 화학물질정보공개심의위원회에서는 기업들의 정보 비공개 신청을 심의한다. 가장 많은 논쟁거리는 제품명과 성분함량이다. 업계에서는 특히 여러 화학물질을 섞어 만든 혼합물의 제품명과 성분함량을 알면 경쟁사가 이를 무슨 용도로 사용하는지 알 수 있다는 이유로 정보 공개에 민감해 한다.

하지만 기본 원칙은 정보 공개다. 비공개 심의를 할 때는 알려지지 않은 정보인지, 엄격하게 비밀로 관리되고 있는지, 공개가 됐을 때 경제적 피해 정도, 타 업종의 반사이익 등을 증빙하는 자료를 제출하도록 한다. 물론 심의 결과에 대해 기업들이 이의신청을 하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 디지털뉴딜 중 하나로 화학물질 분야가 들어있다. 안전원의 역할은

환경부와 같이 주요 산업단지들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유·누출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한다. 광화학카메라를 부착한 드론, 인공지능(AI) 기술, 빅데이터 기술 등을 활용해 산단 지역을 24시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계획이다. 화학물질 유출을 초기에 감지하고 2차 피해도 막을 수 있게 된다. 올해 산단 1곳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하고 15곳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5년 동안 915억원 정도를 투입한다.

사실 안전원이 규제만 하는 곳이 아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안전은 규제 없이 담보하기는 어렵다. 안전원은 제도들이 현장에 잘 안착되고 기업들이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위해관리계획 이행과 관련해서 관리자, 실무자, 장비 설비 보수업체 등을 일일이 면담을 하고 취급시설 현황도 살핀다. 이러한 현장 밀착 활동을 통해 해당 업체의 안전관리 인식 등을 파악하고 문제를 보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힘들지만 기업들이 안정적인 경영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화학물질 안전관리는 필수다. 안전원은 이런 어려움을 덜기 위해 현장 맞춤형 지원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용어 설명

장외영향평가=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이 주변 지역 사람이나 환경 등에 피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설치됐는지 확인하는 제도다. 이 과정을 통해 사업장들이 충분한 화학물질 관리 안전성을 확보하도록 유도한다.

위해관리계획= 사고대비물질을 지정 수량 이상 취급하는 사업장에서 화학사고 발생 시 활용가능한 비상대응 체계를 마련해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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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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