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유 4억배럴 풀어도 시장 ‘냉담’

2026-03-12 13:00:05 게재

IEA, 사상 최대 규모 방출 … 이란 “200달러 각오하라” 위협에 유가 오히려 반등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사상최대 규모인 전략비축유 4억배럴 공동 방출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시장은 안도감보다 불확실함에 먼저 반응하는 모습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무력충돌이 격화되고, 이란이 “배럴당 200달러를 각오하라”고 위협하면서 국제유가는 오히려 급반등했다. 전쟁 13일째 세계 경제는 ‘3차 오일쇼크의 문턱’에 서있다는 경고가 제기되고 있다.

코스피가 소폭 하락하며 장 초반 5,600선을 내주며 출발한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17.11포인트(0.30%) 내린 5,592.84로 출발했다. 원/달러 환율은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 장기화 우려가 커지면서 1,480원대로 뛰었다. 연합뉴스

IEA는 11일(현지시간) 32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비상 비축유 4억배럴을 시장에 공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IEA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이자 공동 방출 기준으로는 역사상 6번째다. 전략비축유 제도는 1973년 1차 오일쇼크후 에너지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1974년 IEA가 설립되면서 함께 도입됐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현재 직면한 석유시장 도전은 규모 면에서 전례가 없다”고 방출 배경을 밝혔다.

국가별 방출도 속도를 내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1억7200만배럴을 다음주부터 약 120일에 걸쳐 풀기로 했다. 한국은 2246만배럴, 일본 약 8000만배럴, 프랑스 1450만배럴, 영국 1350만배럴 방출계획을 각각 내놓았다. 인도도 “필요할 경우 적절한 조처를 할 준비가 돼 있다”며 호응했다.

IEA 회원국들이 보유한 비상 비축유는 12억배럴 이상, 산업 비축량까지 합치면 18억배럴 수준이다. 이번 4억배럴 방출은 전체의 약 22%에 해당한다.

전세계 원유소비량은 하루 약 1억배럴이다. 4억배럴은 산술적으로 나흘치 소비량이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부족해진 공급량을 메우는 목적인 만큼 수십일치 분량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시장이 이 ‘초대형 처방’에도 좀처럼 안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유가는 전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쟁은 곧 끝날 것”이라는 발언에 급락했다가 하루 만에 다시 방향을 틀었다. 11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4월물은 전장보다 4.6% 오른 배럴당 87.25달러에 마감했다. 5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3.5% 상승한 90.9달러선에 거래됐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 4척이 피격됐다는 소식, 이란의 봉쇄 위협, 중동 석유 생산시설 가동중단 소식이 연이어 터지면서 비축유 방출 효과를 집어삼켰다.

월가도 냉정하다. JP모건은 “하루 1600만배럴에 달하는 공급 부족을 고려하면 비축유 방출은 초기 완충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스웨덴 은행 SEB의 비아르네 시엘드로프 분석가는 로이터에 “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 비축유 방출이라고 해도 시장은 현재 위기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보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끝내고 싶을 때 언제든 끝날 것”이라며 조기 종전을 자신했지만 이스라엘은 “모든 목표를 완수할 때까지 시간 제한 없이 작전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란 혁명수비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장기 소모전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백악관 내부에선 유가 급등을 3~4주 정도 감당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기류가 전해지지만 시장은 그 계산에 의문을 품고 있다.

비롤 사무총장도 이번 방출결정이 임사방편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4억배럴 방출은 시장 교란의 즉각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중대한 조치이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석유와 가스의 안정적 흐름 회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건 운송 재개”라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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