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역봉쇄 … 호르무즈, 다시 화약고 되나
오늘 밤 11시부터 이란해상 봉쇄 돌입
이란 거친 반발 “죽음의 소용돌이 될 것”
휴전협상이 결렬되자 미국이 한국시간 13일 밤 11시(미 동부시간 13일 오전 10시)부터 이란 항구를 오가는 모든 해상교통에 대한 봉쇄 조치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란은 “오판하면 죽음의 소용돌이가 될 것”이라고 맞받아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일촉즉발의 화약고로 떠올랐다.
미 중부사령부는 1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대통령 포고령에 따라 미 동부시간 13일 오전 10시부터 이란 항구와 연안 지역을 출입하는 모든 국가 선박에 대해 봉쇄 절차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대상은 아라비아만과 오만만에 위치한 이란의 모든 항만이며, 국적과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만 이란 항구가 아닌 제3국 항구를 오가는 선박의 해협 통과는 방해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표면적으로는 ‘항행의 자유 보장’과 ‘이란 거래 차단’을 동시에 겨냥한 조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란의 자금줄을 끊어 협상 테이블로 다시 끌어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이 전쟁 기간에도 원유 수출과 해협 통행료 징수를 통해 외화를 확보해왔다고 판단해 왔다. 미국이 요구해 온 것은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 개방이었지만 이란은 봉쇄 위협 자체를 핵심 협상 지렛대로 활용했다. 이번 조치는 그 지렛대를 미국이 빼앗아 쥐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군사공격보다 비용이 덜 들면서도 즉각적인 압박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습이나 지상전 없이도 이란 경제에 직접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미국이 해협 통제권을 장악했다”는 메시지를 국내외에 과시할 수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이미지를 부각할 기회이기도 하다.
이란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거칠었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호르무즈 해협의 모든 선박 통행은 이란군의 완전한 통제 아래 있다”며 “적들이 단 한번이라도 오판한다면 해협은 죽음의 소용돌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미국 군함의 접근 자체를 휴전 위반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미 해군 함정이나 호위세력에 대한 직접 타격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정치권도 맞받아쳤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 X에 미국 주유소 가격 지도를 올리며 “지금 가격을 즐겨라. 봉쇄가 시작되면 갤런당 4~5달러 유가가 그리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조치가 세계 유가 급등과 미국 소비자 부담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경고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핵심 통로다. 단기간의 군사 충돌이나 항행 차질만으로도 국제 유가, 해상보험료, 운임, 물가 전반이 요동칠 수 있다.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주요 수입국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미국의 조치가 협상 재개의 지렛대가 될지 전면 충돌의 도화선이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란 외 국가 선박은 통과를 허용한다”고 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상선들이 안심하고 해협을 지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선박 한척이라도 피격되거나 오인 충돌이 발생할 경우 휴전 국면은 순식간에 붕괴할 수 있다.
외교가에서는 현재 상황을 ‘전쟁도 평화도 아닌 관리된 위기’로 본다. 양측 모두 전면전의 위험성과 비용을 알면서도 물러설 경우 치를 정치적 대가도 크다고 판단한다. 결국 미국과 이란이 직접 충돌 직전까지 긴장을 끌어올리며 상대의 양보를 압박하는 위험천만한 치킨게임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